[데스크 칼럼] 이종원 충남본부 부국장

어릴적 대문만 나서면 밀, 보리밭이 지천이었다. 엄동설한 추위를 이기고 올라온 밀·보리 이삭이 필 무렵이면 개구쟁이들의 더할 나위없는 놀이터였다. 동네형들을 따라 보리줄기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고 실하게 영근 이삭을 따 손으로 비벼 껍질이 벗겨진 알곡을 씹기도 했다.

껌 구경하기 힘들던 그시절 생밀 한 움쿰을 입에 넣고 오랫동안 씹다보면 쫀득쫀득 찰진 껌이 됐다. 그 시절 봄이면 밀껌이 대유행이었다. 그러나 풍선껌처럼 불어보지만 크게 부풀지 못하고 터지면서 입가에 엉겨붙기 일쑤였다. 한번은 밀껌을 만들다 밀수염이 목안에 걸려 죽을 고생을 한적이 있다. 빼내려면 더 깊이 들어가 그때 따가운 고통은 요즘 흔한 말로 "안당해 봤으면 말을 하지 마"다.

지금 같으면 구급차타고 응급실 갈 일이지만 집으로 달려가 할머니가 주신 주먹만한 밥 한 술에 김치를 얹어 꿀꺽 삼키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 많던 60-70년대 밀보리 밭이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현재 재배되는 보리는 거의 도입종이거나 교배종이라 한다. 재래종이 다수확에 밀린 탓이다. 이처럼 토종 곡물이 산업화 진행과 함께 서서히 이땅에서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갈수록 떨어져 20년새 반토막이 났다. 1990년 43%였던것이 2011년 22.6%로 뚝 떨어졌다.

우리가 남아돈다고 알고 있는 쌀도 지난해 자급률이 86.4%로 떨어졌으며, 해가 갈수록 자급률은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인이 하루 세끼 중 한끼를 먹는다는 밀가루 음식 원료인 밀 자급률은 2%가 안된다. 농림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한해 미국이나 호주 등으로부터 수입한 밀이 452만 2000t인데 국내서 생산된 밀은 고작 4만 400t에 불과했다. 수입산이 국내산의 100배가 넘는 양이다. 이처럼 곡물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몬산토, 듀폰 같은 다국적 농약·종자회사의 공습이 무섭다. 그중 몬산토는 오래전부터 GMO(유전자변형농산물) 재배면적을 늘리면서 국내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또한 국내 토종 농약회사인 흥농, 중앙종묘를 흡수하였고 점차적으로 국내 종자시장의 패권도 노리게 됐다.

무, 배추, 고추와 같은 작물 씨앗도 특허사용료인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 이렇게 지불하는 로열티가 한해 200억원이 넘는다. 파프리카 씨앗의 경우 1g에 15만원의 로열티가 지불된다. 금값이 1g에 5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파프리카 씨앗이 금값의 3배인 셈이다. 종자산업이 반도체에 버금가는 황금노다지 산업이 된 것이다. 유전자변형 씨앗은 2세대땐 저절로 불임이 돼 자살씨앗으로 불리기도 한다. 생산지에서 수확한 씨앗을 다음해 재파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비싼 로열티를 물며 씨앗을 구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유전자변형 씨앗이 자연수분(受粉)을 통해 토종 품종을 오염시킬 경우 고유의 토종종자가 멸종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지난 5월 미국 오리건주에서 재배 승인이 안난 GM밀이 발견됐다고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당시 일본은 즉각 미국 밀 수입중단조치를 내리는 등 발빠른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미국내 조사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도 GMO오염은 의도적인 재배가 아니더라도 운송, 하역과정이나 조류나 곤충 등에 의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 카킬사가 충남 당진항 양곡부두내에 카킬 애그리퓨리나공장을 설립한다고 한다. 계획대로라면 올해안에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규모의 배합사료제조공장이 완공된다. 사료생산을 위해 GMO곡물 원재료의 물동량이 많아지면 토종종자의 오염은 어쩌면 불가피한 상황이 될 것이다. 인체의 유해여부를 떠나 토종종자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단단한 대비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입산 황소개구리가 오염시킨 생태계를 복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리는 교훈 삼아야 한다.

토종작물을 잘 보전하고 네덜란드의 황금산업이 된 파프리카에 버금가는 육종산업 육성에도 전폭적인 국가 지원이 절실하다. 농업분야도 한류열풍이 불기를 고대한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의 말을 되새기면서…. "석유를 장악하면 세계를 장악하고 식량을 장악하면 세계인류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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