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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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가?'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다. 연예인 아빠와 아이가 모처럼 시간을 함께 보내며 소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이고, 현실과 비교하면 괴리감이 크다. "아빠 어디가?"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대답은 빤하다. "돈벌러간다. 왜? 몰라서 묻냐?" 아빠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디에도 간 적이 없다.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직장, 집, 직장, 집, 뺑뺑이 돌기에 바빠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없었을 뿐이다. 아이들은 외친다. "아빠, 나빠"

▶난 여름휴가 때가 되면 텐트하나 달랑 들고 무주구천동으로 향한다.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은 리얼 버라이어티다. 각본 없는 비연출, 의외와 우연의 상황이 재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내 여행에 따라나서지 않는다. 비가 오면 물폭탄을 맞아야하고, 등짝이 땅바닥과 붙어 퉁퉁 붓는 '비박'이 싫어진 거다. 더더욱 이젠 아이들이 아빠보다 더 바쁘다. "얘야, 어디가?" "학교, 학원, 학교, 학원, 뺑뺑이를 도는데 어딜 가요." 소통은 빗물에 쓸려 떠내려간 지 오래다. "아빠, 나 바빠."

▶아빠는 휴일이면 잠만 잔다. 아이들도 틈만 나면 잠을 잔다. 잠의 신(神) 히프노스 부자(父子)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제법 잘 놀아줬었다. 가까운 공원에서 야구놀이를 하고, 책도 읽어줬으며, 함께 비옷을 입고 빗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아이들 몸이 크고 영혼의 깊이가 커지자 이젠 엄마만 찾는다. "엄마, 어디가?" 그런데 엄마가 더 바쁘다. 밥하랴 빨래하랴 뒤치다꺼리하랴 부업하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결론은 엄마는 바쁘고 아빠는 나쁘다. 이 시대 아버지들은 이사갈 때 이삿짐 트럭에 제일 먼저 올라앉는다고 한다. 아내와 아이들이 버리고 갈까봐 무서워서란다. 슬픔이 내려앉지 않는가.

▶실업자 아버지 얘기가 있다. 비 오는 어느 날, 안방 천장에서 빗물이 줄줄 샜다. 아버지가 잠깐 외출하겠다며 집을 나섰다. 하지만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식구들은 그제야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찾아 나섰다. 아무리 둘러봐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눈물 같은 빗물만 쏟아 부었다. 가족이 체념하고 돌아오는데 누군가가 우산을 쓴 채 지붕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지 않은가. “어머니, 우리 집 지붕 위에 누가 있어요." "아들아! 아빠가 돈을 못 버니까 미안해서 저렇게 빗물이 새지 않게 몸으로 때우고 있단다." 물론 우스갯소리겠지만 아빠들은 가족의 우산이자, 눈물도 가리지 못하는 찢어진 우산 신세다. 이제 아이들은 아빠의 행방을 궁금해 하지 않는다. "아빠, 어디가?"라고 묻지 마라. 그냥 "사랑해요 아빠"라고만 하면 된다. 그러면 답할 것이다. "그래. 아빠도 널 사랑한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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