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닮은 어린이들

지난 30여 동안의 교직 생활을 마치 학을 닮은 양, 고개를 길게 늘여 지나온 발자취를 뒤돌아 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하는 아쉬움과 어린이들에게 죄를 진 것 같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나 좀 마음이 위안을 갖는다면 교직의 첫발을 디디면서 어린이들 글 쓰기 지도 만큼은 열성을 다해 지도했다. 제일 열심히 지도했던 때는 대전에 전근 오기 바로 직전에 근무했던 논산 서광초등학교에서였다.

6학급에 전 교생이 180여명 밖에 되지 않았고 산 속에 푹 파묻혀 있는 학교였다. 뱀 한 마리가 지나간 것 같은 꾸불꾸불한 학교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면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선생님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는 자전거 짐받이를 붙잡고 졸졸 따라왔다.

교실에 들어서면 누가 꽂아 놓았는지 꽃병에는 항상 들꽃이 반겨 주었다.

흙을 닮아 순박하지만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 글 쓰기 지도를 시작했다. 우선 글 쓰기에 대한 책 40권을 준비해 아침자습시간과 점심시간에 읽도록 하였고 스크램북을 준비시켜 느낌을 쓰거나 신문이나 잡지에서 마음에 드는 글을 오려 붙이게 했다.그리고 희망하는 어린이는 방과 후 교실에서 글을 써 보기도하고 같이 글 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매일 해가 교정의 플라타너스 나무의 그림자를 두 세배 늘였을 때까지 나눴다.

그러던 중 대전 보문산 야외 음악당에서 전국 어린이 글짓기 대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린이 20여명과 대전행 기차에 올랐다.

보문산 야외 음악당에 도착하니 대전, 아산, 옥천 등에서 온 5000여명의 어린이들로 꽉 차 있었다. 글제는 '물'과 '불'이었다. 글을 쓰는 우리 어린이들의 연필 든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얘들아, 괜찮아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쓰거라."

나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며칠 후 입상자 발표를 했는데 금, 은, 동, 장려상에 고루 17명이나 상을 타게 됐고 단체상도 받게 됐다. 흙을 닮아 도시 어린이들이 생각 못하는 순박한 글을 쓴 결과 같았다. 글 쓰기 지도는 어린이들이 빗소리, 자동차 소리 같은 들리는 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고 양심의 소리, 역사의 소리, 진리의 소리, 그리고 산과 들을 거닐면서 자연의 소리와 같이 안 들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멋을 아는 어린이도 기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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