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옥 칼럼]

얼마 전 국제중 입시비리 주도 혐의로 구속수감된 김하주 영훈학원 이사장(80)에 대한 뒷얘기가 아직도 무성하다. 그러잖아도 사학 비리의 몸통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터였다. 그의 법원 출두과정과 구속수감 당시의 판이한 모습은 그야말로 한편의 코미디를 연상케 한다.

지난 2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북부지법에 출석한 그는 위중한 환자의 모습을 그대로 연출해냈다. 몸에 링거를 꽂고 마스크로 입을 가린 채 구급차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다. 중환자 행세를 하던 그가 그로부터 10시간 남짓 지난 후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버젓이 두발로 걸어 나와서 구치소로 가는 승용차에 오르는 게 아닌가.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랄 수밖에….

"거기서 무슨 기적이 일어났기에 벌떡 일어났나", "아플 땐 법원으로", "유전침대, 무전수갑" 등의 조롱과 분노 섞인 댓글이 인터넷에 넘쳐났다. 거물급 인사들이 죄를 짓고도 참회하기는커녕 법원이나 검찰청사에서 환자복을 입고 벌이는 코스프레(특정 캐릭터를 모방하는 행태)에 넌덜머리가 났을 법하다.

이런 류의 휠체어 퍼포먼스 효시는 건국 후 최대 금융부정 사건으로 기록된 '한보 사태'의 정태수 전 회장을 꼽을 수 있다. 한보 부도(1997년 1월 23일) 일주일만에 구속된 그는 법정이나 국회 한보특위청문회에 환자복 차림에다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그 이후 '거물급 비리→휠체어 쇼→솜방망이 처벌' 도식은 한국사회의 엉터리 기득권 거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재벌 총수들이 경제 사범으로 지목되면 으레 이런 행태를 보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권력자들 또한 법의 심판대에 오르면 환자복 차림으로 나와 엄살을 부린다. 비겁하기 짝이 없다. 일일이 열거하기 조차 힘들다.

재벌총수 형량에 대해선 '3-5제(징역 3년, 집행유예 5년)'라는 공식이 나돌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재벌 앞에만 서면 검찰이나 법원 모두 위축되고 만다는 방증이다. 기소되더라도 보석이든 집행유예 등으로 금방 풀려나기 다반사다. 형기를 제대로 채운 사례가 드물다는 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거기다가 사면복권을 통해 당당하게 사회에 복귀하는 사례도 일반화돼 있다.

'돈'과 '권력' 그리고 '정의'의 상관관계는 그 시대나 사회의 건강도를 반영하는 결정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법치주의라는 건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정의라는 규범이 제대로 지켜지는 사회이어야 옳다.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회적 믿음이 깨질 경우 우리 사회의 질서와 안녕은 기대할 수가 없다.

때마침 청부 살해 교사범(敎唆犯)으로 무기징역형을 받은 중견기업 회장부인이 4년 1개월 동안 병원 호화특실에서 지내온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말만 무기수로 분류됐을 뿐이다. 무려 13개 병명의 진단서로 형의 집행정지 신청 3회, 연장 7회의 특혜를 누렸다. 수시로 외출 외박도 했다고 한다. '합법을 가장한 탈옥'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법치가 속칭 빽과 돈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당해온 결정적 증거가 아니고 뭔가. 급기야는 피해 학생 동문들이 이를 질타하는 신문광고를 냈다. 국민 다수가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에 동의한다는 조사결과는 법치주의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그런 맹점은 '그물론'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강자에게도 추상같은 법의 권위를 보여주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힘이 아닌 공정한 법이 실현되는 사회, 사회적 약자에게 법이 정의로운 방패가 되어주는 사회"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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