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황천규 제2사회부장

“참을 인 세 번이면 늑대같은 고객도 양같은 손님으로 변합니다.”

TV를 시청하다 눈에 들어온 한 회사의 콜센터 벽면에 붙은 문구다. 이 문구를 보는 순간 실없는 웃음이 잠깐 스치면서 한편으론 한숨이 흘러 나왔다. 과연 참을 인 세 번을 되뇌면 막무가내로 화를 내던 고객이 스스로 분을 진정시키고 조용해질까. 모 항공사 여승무원은 라면을 몇차례 다시 끓여서 갖다 바쳤어도 그에게 되돌아온 건 ‘잡지책 몽둥이’테러였다. 이렇듯 고객 앞에서 항상 웃는 얼굴이지만, 웃어도 웃는 게 아닌 감정노동자의 작업환경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그들에게 횡포를 일삼는 이들은 대기업 중역 등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바로 우리같은 소시민도 터무니없는 ‘갑질’의 장본인이 될 수 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면서 갑 중의 갑 ‘왕’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손님을 왕으로 모시라는 서비스업계의 ‘금과옥조’가 이런 현상을 낳았다. 음식이 좀 늦게 나온다고 종업원에게 화를 내며 소리치고, 서빙하는 직원들에게 야한 농담을 하면서 반말을 내지른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런 행태도 갑질은 갑질이다.

종업원이 이런 처사에 분을 이기지 못해 손님에게 대들기라도 하는 날이면 바로 그 날이 짐을 싸 집으로 가야하는 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격을 모독하는 언사에도 웃어 넘겨야 하고, 말도 안되는 억지에도 무조건 죄송하다고 조아려야 하는 그들을 우리는 어뗳게 대하는가. ‘반격’이 없다고, 더 막나가는 몰상식 일변도다. 더군다나 이런 업종에 근무하는 이들 중 여성이 많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 기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여성 취업자 1000만명 중 서비스종사자는 약 165만명, 판매종사자는 약 149만명으로 전체의 30.9%가 감정노동자다. 반면에 같은 분야의 남성 취업자는 16.3%에 그쳤다.

가정에 한 푼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일터로 나선 여성들이 저임금 등 열악한 근무환경을 고스란히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뒤돌아 한숨 짓고 눈물 흘리면서도 고객 앞에서는 환한 웃음을 짓느라 그들의 속은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고객에게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제스처라도 취하면 “억울하면 출세해’, “꼬우면 때려쳐”라는 식이다.

항공사 여승무원을 막 대한 대기업 임원을 나무라고 흥분하면서 우리는 각종 일상에서 정도만 덜 했을 뿐이지 그들과 똑같은 행태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아마 그들처럼 높은 자리에 오르면, 더 할지도 모른다. 그런 높은 자리에 올라서질 못해서 그렇게 하지 못할 뿐이다.

‘강한 자에 약하고, 약한 자에 강한’ 비열한 세태다. 약한 자를 챙기고 보듬는 배려가 아쉽다.

기업들도 이제 변해야 한다. 무조건 참으라는 말 대신 언어폭력, 성희롱 등엔 법적 대처 등 강력하게 대처하고 그들의 하소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콜센터 메카로 자리잡은 대전시도 감정노동자인 상담원들의 감정을 헤아릴 때가 됐다. 대전에서는 100여개 업체 1만 4000명의 근로자들이 전국의 ‘고충’을 처리하고 있다. 단지 센터를 유치해 고용 창출하는데 만족하지 말고 상담을 하면서 눈물 짓는 상담원은 없는지, 속이 상해 일터를 떠나는 이는 없는 지, 이런 세세한 부분을 챙기는 진정한 콜센터 도시, 대전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