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최인석 편집부국장 겸 경제부장

공작금. 어떤 음모가 깊숙이 숨어있는 모의자금을 떠올리게 한다.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꾸미어 이루게 하는 데 드는 돈'으로 정의돼 있듯이 별다른 뜻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뇌리에는 공작금의 이미지가 과거 간첩단 사건에서 으레 등장해서인지 어떤 음모를 꾸미는 뒷돈으로 각인돼 있다. 실제 공작금은 음모, 술수, 꼼수와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대형유통업체가 골목상권을 파고 들면서 이해 당사자인 슈퍼마켓조합이나 전통시장 상인회에 건넨 발전기금이 상생이라는 본래의 취지와 달리 물의를 빚고 있는 양태를 보면 공작금을 연상케 한다. 입점을 위한 사업조정을 구실로 몇몇이 만나 협의하고 그 내용을 자기네들끼리만 알고 비밀로 하자고 합의한 모양이다. 당초 발전기금이란 명목으로 돈을 제공한 사실 자체도 함구키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이 없듯 입소문으로만 돌던 의혹이 수면위로 서서히 불거지고 있다. 그 내막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쪽은 돈을 주었다고 하는데도 상대방은 안 받았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안 주었다는데도 받았다고 하는 경우도 있으니 도무지 어느 게 진실인지 갈수록 의혹만 증폭되고 있다. 두 경우 모두 돈은 전달되고 받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만 그것이 은밀하게 이뤄졌기에 본래 목적대로 제대로 건너갔는지, 중간에 일부가 샜는지는 아직까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돈을 준 자와 받은 자, 또 건너 받은 자 모두 말이 다르니 분명 흑막은 있어 보인다. 더구나 이로 인해 상인들의 갈등과 반목까지 야기되니 문제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나날이 경제가 어려워지는 여건에서도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동네장사 하는 이웃 간에 불신의 씨앗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대형유통업체가 자본력을 무기삼아 몇몇만 대표격으로 슬며시 불러놓고 금품으로 회유, 매수해 결과적으로 대다수의 영세상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몰고 마는 어떤 밀계를 꾸민 것은 아닌지, 발전기금이라는 미명하에 반발하는 상인 무마용으로 은밀히 뒷돈을 건넨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대형유통업체가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과의 상생을 위해 내놓는 기금은 어떻게 주고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또한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발전기금도 되고 공작금도 될 수 있는 양면성이 있다. 진정 상생을 도모하기 위한 발전기금이라면 동기와 목적이 사회 통념과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전달과정 또한 이해관계인이 모두 알 수 있도록 투명해야 한다. 서로간 합의한 내용은 물론이고 제공한 금액이 얼마인지 등이 조목조목 공개돼야 불신과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연막 속에 주고 받은 밀약과 금품은 의혹과 불신을 사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형유통업체가 입점을 전제로 제공한 돈이 진정한 전통상권 발전기금이었는지 공작금 성격이었는지 베일을 벗기는 것은 이제 관리감독 기관과 사법당국의 몫이 되었다. 당사자들이 제대로 입을 열지 않고 있기에 말이다. 진실이 제대로 규명돼 이웃 상인 간 반목과 불신이 없는 평화로운 전통시장, 활기찬 골목상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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