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옥 칼럼]
원전 비리 반복되는 이유 뭔가
공동체 파괴하는 마피아 문화
이권 공생·유착 환경 근절해야

땅을 치고 통탄할 일이다. 원자력발전소를 멈추게 만든 근본원인을 싸고 국민적인 공분(公憤)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불량 부품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거듭 확인되고 있어서다.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2호기에 시험 성적표가 위조된 제어 케이블이 사용된 걸로 밝혀졌다. 예삿일이 아니다.

비상사태 발생 시 원자력발전소 안전 계통에 동작 신호를 보내는 안전 설비가 이토록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제어 케이블이 제 기능을 상실할 경우 후쿠시마 원전 사태처럼 노심이 녹아내릴 수 있다. 사소한 오작동만으로도 엄청난 대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골이 송연해진다.

상식선을 벗어난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고리 1호기 정지 사고 은폐도 서슴지 않았다. 불량·짝퉁 부품 납품 사례도 한 두번이 아니다. 뇌물 수수, 직원의 마약 복용 등 그야말로 비리 유형이 화려하다. 5개월 전 발표됐던 납품 비리 등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이 무색해진다. 원전의 폐쇄적인 환경이 비리의 온상 역할을 한 셈이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재해 관련 통계를 분석,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해낸 '하인리히 법칙'을 주목할 만하다. 1;29;300이라는 사이클을 들 수 있다. 사망사고 1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평균 29건의 부상사고, 300건의 경미한 사고 조짐을 보인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원인이 없는 결과란 없다. 사소한 사고라도 미리 선제적으로 대응해서 대형 참사를 예방하라는 의미다. 그간 원전 주변에선 안전사고에 대한 경고가 끊임없이 드러났지만 이를 은폐했을 개연성이 크다.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측에 국민적인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건 당연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개인의 사욕과 바꾼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고 규정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연일 "천인공노할 중대 범죄"라면서 과거 유사한 사건이 있었음에도 근본적인 해결을 하지 못한 채 방치했던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시킨 이명박 정권의 책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원인 규명도 그런 차원인가. 이 문제로 인한 국정초반 국정 운영 차질을 미리 차단하려는 눈치다.

여기에서 '이명박 효과'를 떠올려 보자. 2011년 9·15 전력대란에 이어 울산·여수 석유화학단지 등에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잇따라 터질 때도 국민들은 경악했었다. 예비전력 허위보고 등 허술한 공직의식과 비상대응 매뉴얼 미비 등 인재(人災)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대로 드러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한전을 방문, "기본을 지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개탄했지만 그 또한 전력의 컨트롤타워에 대한 낙하산 인사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정부가 원전 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납품비리로 실형을 받았던 임직원에게도 억대 퇴직금을 줄 정도라면 그들의 구조적인 공생·유착관계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른바 '원전 마피아'가 부품비리의 원흉으로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한수원 퇴직자의 재취업 제한, 부품 시험성적서 전수조사 등만으로 실효를 거둘 것으로 믿는 국민은 없다. 원전산업의 안전이 세계최고 수준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상사처럼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부끄럽다.

비단 원전 계통의 일만은 아니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자기들 이권을 지키기 위해 서로 적당히 눈감아 주는 '칸막이 문화'에 안주하는 한 더 이상 기대할 건 없다. 전관예우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재경부 관료 출신(모피아)의 금융권 대거 진출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비리의 원인에 대한 통찰과 자성, 그리고 이를 근절시키기 위한 범사회적인 노력이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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