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황천규 제2사회부

세상이 고요하게 잠든 지난 10일 새벽 1시45분.

당진 현대제철 전로(轉爐) 보수작업을 하던 근로자 5명이 아르곤 가스에 질식돼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40여분만에 모두 숨을 거뒀다. 방독면 등 안전장구만 착용했어도 피할 수 있었던 재해였다.

이 사고로 지난해 9월부터 이 공장에서 감전·추락·끼임·질식 등 7건의 안전사고로 숨진 근로자만 해도 10명이다. 한 달에 한 명꼴이다. 더군다나 모든 사망자가 하청업체나 협력업체 근로자여서 최근 불거진 ‘을사(乙死)조약’의 전형이 아닌가 싶다. 위험한 일, 궂은 일,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하청업체 직원들의 생명이 원청업체의 무관심 속에 ‘안전 사각’ 지대에서 스러져가고 있다.

고용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 같은 산업재해로 숨진 근로자가 1864명(업무상 사고 1134명·질병 730명)이다. 3시간에 1명 꼴로 목숨을 잃는다. 산업재해자 수는 9만 2256명으로 5분에 1명꼴로 다쳐 OECD 국가 중 1위다.

하지만 사업주 입장에서 산재 보험률 증가를 피하기 위해 개인 간의 합의로 끝내는 드러나지 않은 사고까지 합치면 이 보다 훨씬 증가할 것이다.

근로자도 안전수칙을 지켜야 하지만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인식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 같다.

1960~70년대 ‘성장 만능주의’ 사고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업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자 안전을 위한 시설 개선과 투자에는 인색하고 생산성만 운운하는 기업은 소비자에게 외면받아 더 이상 영업활동을 할 수 없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기업주가 근로자 안전을 위해 미적거리면 노동부처가 이를 채근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엄하게 다스려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노동부처의 대처도 처벌 법규도 ‘솜방망이’여서 영 미덥지 않다.

어떻게 한 회사에서 1년도 안돼 10명의 근로자가 안전사고로 숨진단 말인가.

박근혜 정부의 화두는 복지와 국민 안전이다.

국민 안전을 위한 4대악(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유해음식) 근절도 중요하지만 산업현장에서의 안전도 이 못지 않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국민 대다수가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로자가 작업장에서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다.

다 잘먹고 잘살기 위해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생명안전조차 담보되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게 부질없다.

‘하인리히 법칙’이란 것이 있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반드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1:29:300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산업재해로 중상자 1명이 나왔다면 그 이전에 유사한 사고로 29명의 경상자가 발생하고 부상을 당할 뻔한 이들이 300명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작업장에서 일어나는 작은 징후들을 무시하면 반드시 대형사고가 터진다는 얘기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우리 속담과 일맥상통한다.

설마, 설마하는 안일한 대처가 결국 근로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다.

이번에 일어난 현대제철 사고만 해도 그렇다. 이 사고 이전 지난해 9월부터 안전사고로 5명의 근로자가 숨졌는데도 이에 대한 회사의 안전 조치도, 노동부처의 안전을 위한 감시도 미흡했다.

이로 인해 또다시 5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더 이상 후진국형 산업재해로 운명을 달리하는 근로자가 없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경제성장에 걸맞는 안전한 일터 조성에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오늘 하루, 아니 1년 내내 근로자들이 사업장에서 무사히 일을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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