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모여 수다떨고 고민상담 다문화 엄마들의 ‘행복 멘토’
아이 낳고 나니 주변 보여 길에서 울고있는 여성보고 이주여성들의 친구 되기로
선화동에 다목적공간 마련 육아·살림 공유, 자립 모색 그들의 바뀐 삶

▲ ‘행복한 수’ 류은덕 대표.

“한국 여성도, 다문화 여성도 똑같이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인걸요.”

류은덕(40) 행복한 수 협동조합 대표는 대전 중구 선화동 사랑방 지킴이다. ‘행복한 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數), 함께 배우고 만들며(手), 행복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빼어난(秀) 기업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선화동 길목에 자리한 ‘행복한 수’에서는 이 동네 엄마들의 수다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여자의 수다는 ‘힐링’인 법. 피부색은 다르지만, 이곳에 모인 엄마들은 각자의 고민과 희망을 서로 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류은덕 대표 역시 11년 차 엄마다.

“눈앞만을 향하던 시야가 아이를 낳는 순간 180도로 변했어요.” 결혼 전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성격이던 그녀는 엄마가 된 후 전혀 다른 세상과 마주했다. 아이를 낳고 사랑이 많아지면서 나 아닌 주변까지 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둘째를 임신했을 무렵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다. 사회복지사가 된 후 주변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더 커졌다. 동네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있던 어느 날, 그녀는 한 이주 여성의 모습을 발견했다. 운동 중인 그 여성의 눈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후 아이들 유치원에서 그 여성을 다시 만나게 된 엄마 류은덕은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한국인 친구가 생기자 이주 여성의 남편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첫 다문화 친구는 그렇게 점점 밝아졌고, 직장생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작은 관심과 소통의 노력으로 다른 이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벅찼다.

이주 여성들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가까이 사는 다문화 엄마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녀가 만난 다문화 친구 중 열에 일곱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거나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경력이 단절된 주변의 한국 엄마들 역시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문화 친구들과 한국 엄마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그룹 지어 뭔가를 배울 수도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한국 엄마들 몇과 의기투합해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에 신청서를 냈다. 그렇게 지난해 9월 선화동에 ‘행복한 수’의 문을 열었다.

“행복한 수는 선화동 엄마들의 허브(hub) 역할을 하는 곳이에요.”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되는 행복한 수는 ‘다목적 공간’이다. 마을 사람 누구나 들러 쉴 수 있는 커피숍이면서 다문화 엄마들이 모여 천연염색 하고 액세서리도 만드는 공방이기도 하다. 류은덕 대표는 행복한 수를 통해 다문화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길 바란다. 다문화 엄마들이 모여 물건을 만들면 그걸 팔 수 있는 판로를 개척하고, 음식을 만들면 잘 팔릴 수 있도록 홍보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곳에선 한국 여성이든 다문화 여성이든 똑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일 뿐이다. 그래서 류은덕 대표는 행복한 수가 다문화 엄마뿐 아니라 경력이 단절된 한국 엄마도 재기할 수 있는 토대 역할을 하길 바란다. 선화동에 사는 모든 엄마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그녀는 마흔이란 나이가 참 좋다고 말한다. 살면서 이렇게 행복하게 일한 적이 없었단다. 나 혼자만이 아닌 다 같이 잘 살기 위해 하는 일. “혼자서는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함께 이야기하고 만들고 나누면서 저는 지금 정말 행복해요.” 그녀는 얼마 전 선정된 마을기업의 사업비로 안정적 수익을 낼 방법을 찾겠다는 목표가 있다. 정부 지원 없이도 자생할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한 행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함께 일하며 행복을 키우고 전파하는 사회적 기업가로 평생 일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선화동 엄마들의 편한 친구 류은덕 씨는 마흔 즈음 찾은 꿈을 안고 연신 행복하고 행복하다.

글·사진=최예린 기자 ye@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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