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인] 두더지 포획기 발명가 예산 삽교읍 임구순씨

▲ 두더지 포획기

온몸을 에이는 강추위가 어느덧 사라지고 이제는 산과 들녘에 꽃이 피면서 봄기운이 완연하다.

겨울이 지나고 따듯한 날씨가 찾아오자 손길이 분주해지는 것은 단연 농부. 한해 농사를 제대로 짓기 위해서는 두더지를 잡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딸기나 토마토 같은 시설재배 농가는 매년 이맘이면 두더지가 가장 두렵다. 자칫 뿌리라도 건드렸다간 한해 농사를 망치기 일쑤기 때문이다.

이런 두더지의 피해를 막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발명가가 있어 눈길이다. 바로 임구순(70·예산군 삽교읍) 씨가 주인공이다.

임 씨는 이 동네에서 만능가로 통한다. 특허 낸 발명기구만 해도 두더지 포획기와 손이 많이 가는 모내기를 생략시킨 파종기 등이다.

국내에서는 이런 제품이 처음일 뿐만 아니라 성능과 품질까지 우수하다는 공인인증을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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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지으며 느낀 불편함 때문에 시작했던 임 씨의 발명이 주위에 입소문을 탔고, 최근에는 태평양을 넘어 미국에서까지 팔려 나가고 있다.

임 씨의 백발백중 두더지 포획기는 두더지가 센서를 건드리면 포획하는 단순하면서도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2003년 특허를 받은 뒤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문제는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것이라 하루 4개 이상은 무리다. 그래서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임 씨의 발길은 작업장으로 향한다.

임 씨는 훤칠한 외모 덕에 젊은 시절 영화배우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임 씨는 “배우 했다간 망할 뻔했다”며 “안 허길 잘했지. 농사라도 지으니 발명왕이라도 했지.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배우의 꿈을 접었지만, 정작 소질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임 씨는 어릴 적부터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배움의 길을 걷지는 못했지만, 동네에서 버려진 자습서 등을 통해 공부했다.

임 씨의 발명 시초는 두더지 포획기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 독학으로 라디오를 뚝딱 만들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임 씨는 “전기도 없고 도면도 없는데 내가 라디오를 만드니 주위 사람들이 놀랐다”며 “다들 우리 아버지에게 쟤는 꼭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고 회고했다.

임 씨는 이어 “곧바로 인천에 가서 기술을 배웠다”며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전파사를 차리고 동시에 농사를 지었다”고 덧붙였다.

그 당시 임 씨의 아내는 미용실을 운영했다. 그때 아내 대신 위생교육을 갔다가 번뜩 떠오른 것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바로 자른 머리를 모을 수 있게 하는 도구였다.

임 씨는 “머리를 한 번 자르면 꼭 청소하도록 규정이 돼 있다”며 “그런데 한 번 자르고 청소하면 손님들이 먼지가 난다고 싫어했는데, 그래서 한 번에 모으는 도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임 씨가 있기까지는 아내 김도환 씨의 공이 크다. 아내가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남편 자랑을 늘어놓다 보니 전국적으로 유명해 진 것이다.

임 씨는 “대기업연구소도 있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도 많지만, 현장에서 연구하고 피부로 느끼면서 만드는 것이 최고”라며 “앞으로 농민이 두더지로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가지 일에 온 열정을 쏟으며 정상에 오른 이를 '달인'이라고 한다. 생활 속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37년간 연구하고 노력한 임구순 씨야말로 달인임이 분명하다.

이주민 기자 sinsa@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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