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16년째 2명 ‘남몰래 후원’ 퇴직후도 꾸준히 나누고파
수입의 1%는 나누자는 소신 경찰생활 20년, 16년을 기부“나보다 남, 경찰 된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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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삶이란 어쩌면 참 가까운 곳에 있을지 모른다. 순간의 귀찮음을 이겨내 눈앞의 사람을 도와주고, 내가 가진 것의 1%라도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것. 평범하지만 절대 쉽지만은 않은 그런 삶 말이다.

오후 7시경 대전 서부경찰서 형사과 안.

당직을 서던 윤태근 대전 서부경찰서 형사5팀장(45·경위)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뇌사에 빠진 한 여성의 신원을 파악해달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앉아 조사를 받고 있던 피의자가 상기된 윤 팀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일단, 빨리 경찰서로 오시죠.” 전화를 끊고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장기기증원의 코디네이터가 형사과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유독 일이 많은 날이었지만, 뇌사자의 상태가 점점 나빠져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에 그냥 외면할 수 없었다. 뇌사자의 신원을 파악하고 대구에 사는 보호자에게 연락해 동의를 얻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2시간여. 그날 밤, 장기기증을 기다리던 2명은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받고 새 생명을 얻었다.

2010년 경찰서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한 남자는 윤 팀장에게 1998년 대전의 한 공원에서 살해당한 딸의 사건기록을 열람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딸이 죽고 얼마 후 다른 죄목으로 수감됐다가 10년만에 세상에 나온 아버지는 뒤늦게 딸의 사망신고를 하고 싶어 했다.

“일단, 경찰서에 오셔서 저랑 이야기를 나누시죠.” 윤 팀장은 그 아버지와 마주앉아 12년 전 죽은 한 여중생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아직 잡히지 않은 살인범에 대해 함께 분노했다. 윤 팀장은 자신의 두 아이를 떠올리며, 같은 아비의 마음으로 그를 위로했다. 살아있다면 20대가 됐을 여중생의 사건 기록들을 직접 챙기면서 그는 한없이 안타까웠다. 못난 아비는 형사님 덕분에 늦게나마 딸을 하늘로 보내줄 수 있었다고 눈물을 훔쳤다. 그 후 두 남자는 일 년에 한두 번씩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윤 팀장은 경찰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다. 그래서였을까. 18년 전 순경 윤태근은 경찰 제복을 입고 결혼식에 나타났다. ‘누구도 아닌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 윤 팀장은 경찰 생활 20여년 동안 늘 이 초심을 가슴에 품었다. 쏟아지는 사건 업무 속에서도 자신을 찾는 민원인을 성심성의로 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원 전화가 오면 “일단 찾아오시라”고 대답하는 것도 민원인의 입장을 잘 헤아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는 자신이 힘들다는 것이 남의 어려움을 흘려 지나쳐도 괜찮을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메뉴얼과 절차에 집착하기보다는 눈 앞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국민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 그것이 그가 자신과 팀원에게 늘 강조하는 ‘경찰 정신’이다.

“수입의 최소한 1% 이상은 남을 위해 쓰자.”

윤 팀장이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기부를 시작한 건 1997년이었다. 기부 후원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매달 2명의 소년소녀가장을 후원한지도 벌써 16년째. 그는 별일 아니라며 손을 내 저으면서도 퇴직한 후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교육사업을 하고 싶다고 멋쩍게 웃는다. 자신의 작은 도움으로 한 아이가 잘 자라 제 몫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보람이라 말할 뿐이다.

‘바쁘다’, ‘나도 어렵다’는 핑계로 외면하는 것에 익숙한 기자는 순간 그의 말이 무겁게 느껴졌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아주 멀리에 있지만은 않다는 깨달음. 윤 팀장은 한번 찡그리지도 않고 사람을 참 따끔하게 했다.

최예린 기자 floye@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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