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인] 해초 박학규 소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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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예술작품 중에서도 한국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백자(白磁)와 분청사기(粉靑沙器), 목공예품(木工藝品)이다. 그중에서도 기능과 함께 살아 있는 조형미라 할 수 있는 것은 목공예품이 손꼽힌다.

목공예품의 특징은 섬유질의 부드러운 눈매와 나뭇결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깊이 느끼게 한다는 것에 기인한다. 목공예품들이 일상생활에서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의미를 되짚게 한다.

충청투데이는 우리나라 추사체와 나무를 접목한 작품을 서각으로 표현하는 해초 박학규 소목장<사진>을 만나 우리 목공예의 멋과 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서각을 하게 된 계기는.

“올해 42년째, 17살 때부터 서각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나무에 글씨를 쓰는 것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이 많았다. 밥도 못 먹고 사는 시기였는데, 나무에 장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와 서각의 만남은 단순하다. 밥을 굶지 않기 위해서였다. 서각을 하면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힘들었다. 5년간 스승 밑에서 일을 배우면서 1년에 이틀(설날, 추석)을 쉰 게 고작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칼을 갈고 나무를 닦았다. 오후 11시가 돼서야 잠들 수 있었다. 종아리를 맞으면서 배웠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칼조차도 대장질해서 만들었다. 대장질하고 연장을 손수 만들다 보니 서각에 혼이 담길 수밖에 없다. 그 매력에 빠지면 그 누구도 헤어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문기와 묵향을 추사체 서각으로 표현했는데.

“추사 김정희 선생은 예산의 빛나는 자랑이자 세계 예술사에 큰 자취를 남기신 분으로 유명하다. 서각을 통해 또 다른 예술로 승화하고 싶었다. 서예가 이차원적인 평면예술이라면 서각은 작가의 예술혼과 정성을 담아 공간적 표현세계로 승호하는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다. 서각과 소목에 평생을 바쳤다. 주변에서는 40여년간 나무에 새기는 작업을 하다 보니 예술의 경지를 넘어선 수행 정진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말도 한다. 추사 선생의 뛰어난 업적과 예술세계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추사체는 글씨이면서도, 글씨를 뛰어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나

“서각을 할 때 나무는 주로 은행나무와 소나무를 쓴다. 반대로 소목 작업 시에는 참죽나무와 느티나무를 사용한다. 나무별로 무늬가 다르고 색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단단함과 부드러움에도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외국 나무보다 우수성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이 우수한 자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큰 축복이다. 서각은 나무에 대한 상당한 박식이 요구된다. 나무를 다룰 줄 알아야 만이 하고자 하는 작품을 구사하고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때문에 서각가들은 목공예품을 제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각을 하는데 최소 일주일에서 최고 25년까지 걸렸다. 병풍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가공하고 말리고 칠하고 깎는 데 25년이 걸린 셈이다. 그래서 공방에 걸린 서각 작품은 어느 하나같은 게 없다. 글씨체도 같은 듯 보이지만, 조금씩 다르다. 서각으로 만든 작품 저마다 혼이 담겨 있다.”

-마지막 바램은.

현재 충남도 무형문화재를 추진하고 있다. 전반기면 모든 서류가 갖춰진다. 예산군에 제출한 뒤 충남도 승인절차가 남았다. 제가 무형문화재를 신청하는 것은 더 많은 서각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다. 서각은 돈이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취미생활에 그치고 있다. 서각을 보다 널리 알리고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결심했다. 무형문화재가되면 자연스럽게 제자도 배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주민 기자 sinsa@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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