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향만리]이익선 대전시청소년활동진흥센터 부장
수련·봉사활동·문제아지도등 17년째 ‘청소년 나침반’ 역할
“부모 욕심이 아이들 망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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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청소년들이 사회에서 뽑히는 잡초보다 보호받는 잔디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17년간 ‘청소년 나침반’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익선(43) 씨는 기자와의 첫 만남에서 이 같은 메시지를 건넸다.

이 씨는 다양한 청소년 활동과 관련된 사업과 정보를 제공하는 청소년전문기관인 대전시청소년활동진흥센터에서 부장직을 맡고 있다. 이 센터는 1996년 3월 여성가족부와 대전시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설립·운영되는 곳으로, 이 씨는 청소년들의 수련과 봉사활동 현장의 선두에서 그림자 역할을 다하며,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일명 ‘비행청소년’의 생활지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평소 부장이라는 직함보다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선생님으로 불리기를 희망하는 그의 머릿속은 오로지 청소년이라는 단어로 가득 차 있다.27세이던 대학생 시절, 그는 청소년지도활동, 캠페인 활동 등 동아리 활동을 통해 청소년을 위한 삶에 대한 스케치를 시작했다.1996년 7월 센터에서 행정업무를 시작으로 10만원도 채 안되는 월급을 받으며, 청소년을 위한 삶의 첫 발을 내딛었지만 그에게 있어 돈의 가치는 '청소년 권익'을 뛰어 넘지 못했다.

실패를 맛봐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는 단순히 열정하나만으로 청소년 지자체 운영 및 지도에 헌신하며 청소년들이 스스로 잠재역량을 끌어낼 수 있도록 서포터 해왔다. 항상 어른들의 시각보다 청소년들의 창의적인 생각에 동조하며 이들이 건전하게 즐길 수 있고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제7회 대전 청소년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비로소 청소년을 위한 식탁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씨에게 학교에서 흔히 비행청소년, 일진 등으로 불리며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학생들과의 첫 대면은 아직도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다가온다.

그는 수년전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 김모 양을 잊지 못한다. 작은 키에 어눌한 말투, 김 양은 불량서클에서 친구들과의 잦은 다툼으로 학교에서 봉사활동 3개월 통보를 받아 센터로 오게 됐다. 극도로 예민함을 보이는 김 양과의 첫 만남은 이 씨에게 막막함으로 다가왔다. 일손 돕기 활동, 위문활동, 자선·구호활동, 또래친구들과의 어울림 등 김 양이 적응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의 문을 두드렸지만 한달이 지나도 마음의 장벽은 쉽게 무너뜨릴 수 없었다.

그는 김 양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거리를 좁히자고 판단, 김 양의 머릿속에 물음표 대신 느낌표를 심어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성취감과 뿌듯함을 경험한 김 양은 센터생활 두달째 웃음을 보이기 시작했고, 센터 직원들과도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로까지 발전했다.

꿈이 없던 김 양의 입에서 나온 "자원봉사 기간 동안 자신이 돌봐줘야 할 사람이 생긴 것 같다. 사회복지사가 돼 다시 찾아올게요"란 한 마디는 그동안의 걱정과 불안을 녹게 했다고 회고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TV를 통해 김 양을 만날 수 있었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의 한 여성이 심사위원들 앞에서 자신의 끼를 발산하고 있었다. 이 씨는 더 이상 탈선없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김 양을 마음으로 응원했다. 청소년을 위한 삶을 살아온 이 씨는 부모의 욕심이 자녀들에게 악(惡)이 될 수 있고, 악(藥)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 교육은 아이들에게 수능을 인생의 최종 종착점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오히려 내 자녀를 판사·검사·의사로 만들려는 부모의 욕심보다 체험을 통한 과정에서 진로를 찾을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진심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했다.

최정우 기자 wooloosa@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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