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야학 이강혁 교감]
낮엔 일하고 밤엔 학생들 가르쳐직장생활 힘들어 야학쉬고 싶어도
수업 마치고 나면 오히려 더 가뿐 매년 50~60명 검정고시 합격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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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밤엔 엄마한테 글을 쓰고 있어요. 제 나이 예순 네 살이 되어서야 ㄱ, ㄴ, ㄷ을 배워 글을 써 봅니다.”

한마음야학(대전 중구 대사동)이 지난해 개최한 한마음 문화예술제에서 장미반 김영자(64) 씨는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라는 글을 낭송했다.

낭송 도중 끝내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를 보고 학생도 울고 교사도 울었다.

예순 네 살에 처음으로 ‘김영자’란 이름을 한글로 쓸 수 있게 됐고, 그 이름을 하늘에 있는 어머니가 볼 거라는 생각에 그녀의 눈물은 기뻤다.

그리고 함께 울었던 한 사람이 있었다.

한마음야학의 이강혁(41) 교감.

그는 한글을 배우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김 씨를 설득하고 격려했던 나이 어린 스승이다.

하지만 늦깎이 나이에 한글을 배운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겨 도중에 관두는 분들도 있어 안타깝다고 이 교감은 말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해 낸 것이 학급 반의 이름을 바꾸는 것.

주간, 야간으로 나누어져 있는 한글반을 ‘장미반’과 ‘무지개반’으로 바꿨고, 초등반과 중등반, 고등반도 각각 ‘상아탑반’, ‘지혜반’, ‘들꽃향기반’으로 바꿔 달았다. 나이 들어 한글을 배우고, 나이 들어 초등반을 다니는 사실이 행여 주위 사람들에게 한글도 모르는 사람,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란 인식을 줄 까 걱정하는 분들을 위한 조그만 배려였다.

한마음야학은 야학에 뜻이 있는 10여명이 모여 1989년 7월 문을 열었다.

당시에는 마땅한 교실이 없어 천막을 치거나 교사들 자취방에서 가르치기도 했지만 배움의 열정으로 넘치는 교사와 학생에게 환경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입소문을 타면서 학생도 조금씩 늘기 시작해 10여명이었던 학생 수가 지금은 100여명 이상이고, 10명이 채 되지 않았던 교사도 35명으로 늘었다.

학교 운영비는 180여 명의 후원 회원이 매달 3000~1만원 씩 보내주는 성금으로 충당하고 있지만, 부족할 때는 직장생활을 하는 교사들이 조금씩 보태기도 한다.

학교가 커지면서 2007년 대전시에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됐고 이 교감이 한마음야학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이때쯤이다.

충북 청주 출신으로 한양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법조사회의 부조리에 환멸을 느껴 대기업에 취업했다.

봉사활동에 관심 많았던 그는 대학 시절 해 보고 싶었던 야학을 찾던 중 대전에서 야학을 하고 있는 후배의 소개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할머니들 중에는 집에 돈이 없어 초등학교를 못 간 분들도 있지만 여자란 이유로 학교를 다니지 못 한 분들도 있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늦게라도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는 분들을 돕고 싶었어요.”

그도 사람인지라 직장생활로 힘들 때는 하루쯤 쉬어야겠다고 맘먹다가도 이들을 생각하면 이미 발걸음은 학교를 향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분들과 수업을 하고 나면 오히려 몸이 가뿐해짐을 느낀다고 했다.

“제 수업으로 그분들이 지식을 채우지만 저도 그분들을 통해 나를 채워가는 것 같아요.”

이 교감은 기자의 찻잔에 데워진 물을 조용히 채워 주었다. 이런 그의 노력 덕분에 한마음야학에서 매년 50~60여 명이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지난해에는 설립 이래 제일 많은 65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이제라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마음학교에 다니는 우리는 무엇보다 행복한 학생입니다’

장미반 박정순(74) 씨가 한글로 썼다는 이 글귀가 수줍게 웃는 이 교감의 얼굴과 오버랩 됐다.

차가 따뜻했다.

글=원승일 기자 won@cctoday.co.kr

사진=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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