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향만리] 김수경 교육공동체 ‘한뼘더’ 대표
일하며 짬짬이 마을도서관서 독서 지도 직장 그만두고 주민과 뭉쳐 본격적으로
아이들에게 사랑주며 나도 행복함 느껴 서로가 돕는 이곳이 행복한 마을이죠

▲ 교육공동체 한뼘더 김수경 대표.

"한 아이에게 스무명의 엄마를 만들어 주고 싶어요."

김수경(38) 씨는 대전시 중구 석교동 아이들의 '엄마 선생님'이다. 김 대표는 어린 시절 선생님을 참 무서워했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학교 분위기에 그녀는 움츠러들었다. 그런 그녀에게 책은 참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선물 받은 동화책의 감동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세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는 어린 시절 학교의 두려움을 다시 느꼈다. 자기 아이들이 행여 강압적이고 경쟁적인 교육 현실에서 아파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석교동에서 20년 가까이 살며 아이를 낳고 기른 그녀는 자연스레 남의 집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됐다. 다른 가정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맞벌이를 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녀는 이왕이면 형편이 어렵고 소외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고 싶었고 어린이집과 도서관 등에서 독서지도를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어느 날, 그녀는 한 아이의 눈 속에 새겨진 '결핍'을 읽게 됐다. 사랑을 갈구하는 눈빛이었다. 그녀는 더욱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아이들을 위해 책을 읽었다. 그러나 야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어느 날, 그녀는 자기 아이들의 눈에서도 똑같은 '결핍'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고민 끝에 일을 접었다.

석교동에는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만든 '알짬마을도서관'이 있다.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과 마을도서관을 매일같이 다니던 그녀는 자신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엄마들을 만났다.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을의 아이들이 모두 충분한 사랑 속에서 자라날 수 있을까?”

엄마들은 함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우선 멘토를 자청한 4명의 엄마들이 아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공부를 시작했다. 곧이어 석교동의 부모 11명은 십시일반 500만원을 모아 장소를 마련했다. 그렇게 2011년 7월 '품앗이성장학교'가 세워졌다. 그리고 1년 만에 마을기업에 선정되면서 '교육공동체 한뼘 더'가 됐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학교공부를 '더하기'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이곳의 아이들은 자신이 할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계획한다. '엄지수업'은 한 아이가 게시판에 배우고 싶은 걸 적어놓으면 함께 배우고 싶거나 자신이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생각한 다른 아이들이 답변을 적어 스스로 수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체험여행 계획을 짜는 것도 주도권은 아이에게 있다. 가고 싶은 곳부터 가서 할 일까지 아이들이 각자 원하는 것을 발표하고, 아이들끼리 토론을 통해 결정한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솔직해진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하고 합리적으로 표현할 줄 안다.

“처음엔 아이들이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고 있었죠. 당연히 그걸 표현할 수도 없었구요. 그동안은 그것을 찾아가는 가는 과정이었어요."

그녀는 아이를 면밀히 관찰하되, 앞서나가진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김 대표도 교육공동체를 시작한 지 1년이 돼서야 깨달은 사실이다.

김 대표는 '한 아이에게 20명의 엄마 만들어 주기'를 꿈꾼다. 그 꿈을 위해 교육협동조합을 만들어 석교동의 부모들과 함께 운영하고 싶다는 구체적 계획도 세우고 있다. 다른 장소에 있던 알짜마을도서관도 지난해 같은 장소로 합쳤다. 아이들이 놀면서 책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을 사람들의 생각이 통한 결과다. 그녀는 각자 흩어진 한 명의 힘은 약하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의 힘이 모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마을 공동체가 힘을 합친다면 그녀의 꿈도 얼마든지 이룰 수 있을 거라 믿는 것이다. 서로의 아이를 품고 돌보며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마을.

'엄마선생님' 김수경 대표는 오늘도 너른 품으로 꿈을 꾼다.

최예린 기자 floye@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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