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미래다-인향만리]
정운영 대전 북부소방서 전민 119안전센터장
남 위한일 뭐든 하는 소방관 10년 넘게 점자 번역 봉사 대전 둘레산길 개척하기도

? ?
?
? ? ?
?

‘백발(白髮)대장' 정운영(57) 대전 북부소방서 전민 119안전센터장은 남을 돕는 것이 팔자인가보다.

우연한 기회에 소방관이 됐다고 심드렁하게 말하면서도, “남에게 봉사하며 월급을 받는 유일한 직업이 소방관”이라며 밝게 얘기하는 모습에서 그의 삶이 묻어난다.

소방관이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가 별일 아닌 듯 얘기하는 점자 책 번역 봉사, 대전둘레산길과 충남 금산 둘레밟기길 만들기, 충남도지 편집 참여 등은 소방관 본업과 무관하면서도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들이다.

정 센터장은 개인 시간을 쪼개 책을 점자로 번역한다. 번역 봉사를 한 지 벌써 10년째다. 시간으로 따지면 2000시간이 넘는다. 동료 소방관 덕에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봉사였지만, 점자 번역은 이제 그에게 일상이 됐다.

“내가 점자로 번역한 책을 어떤 이가 읽을진 모르지만, 그래도 시각장애인 누군가가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한 권의 책을 번역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짧지 않다. 게다가 혼자서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내용을 빠트리지 않고 점자로 번역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혹여 내용이 잘못됐을까 검토를 반복하다 보면 책을 거의 외울 경지에 오를 지경이다.

그가 번역하는 책은 좀 특별하다.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소설이나 참고서, 종교 서적 등을 번역한다면, 그는 과학 관련 서적이나 산과 숲, 등산 등에 관한 책들을 많이 번역한다. 여기엔 산과 자연, 역사에 대한 남다른 그의 애정이 녹아 있다. 그는 현재 대전의 명물이자 시민의 여가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는 대전둘레산길을 만든 사람 중 하나다.

소방관인 그는 '생명의 숲' 운영위원이자 숲 해설가로도 활동하며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대전둘레산길 잇기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2년에 걸쳐 대전 주변의 산들을 돌며 코스를 구상하고, 길을 개척했다. 또 대전의 둘레산 곳곳에 남아 있는 문화유적과 역사를 공부해 이야기가 있는 산길로 만들고자 했다.

“산줄기를 타고 다니다 보면 그 고장의 역사를 잘 알게 되잖아요. 둘레산길을 걸으며 대전과 숲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힘들었을지 모를 산행이 어느새 끝날 정도로 재미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대전둘레산길의 길이가 무려 130㎞. 그는 이렇게 이어진 대전둘레산길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도 이어지길 바랐다. 그는 대전과 금산의 향토사에 관심도, 아는 것도 많다. 그래서 2006년에 발간된 충남도지의 추부면편을 맡아 집필하기도 했다. 그는 산악구조대 시절인 30대 후반부터 머리가 하얗게 새었다. 이 때부터 '백발대장'이란 애칭이 그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는 지금보다 봉사 활동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한다. 남을 위한 봉사가 자신에게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를 몸소 느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작은 재능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나눔’을 꿈꾼다. 나눔을 통해 그는 화마와 싸우고 다른 사람의 삶을 구해낼 힘과 용기를 얻는다. 백발대장 정운영 센터장이 언제나 환하게 웃고 있는 이유다.

글=최예린 기자 floye@cctoday.co.kr

사진=정재훈 기자 jprime@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