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토일]태안 기름유출 5년… 태배길·솔향기길 가다

▲ 5년 전의 상처를 딛고 고운 모래와 맑은 파도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해안선을 되찾은 모습.
▲ 5년 전의 상처를 딛고 고운 모래와 맑은 파도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해안선을 되찾은 모습
태안은 충남을 대표하는 청정해역으로 많은 이들이 수려한 경관을 벗삼아 거닐고자 찾아오던 명소다.

꼭 5년 전 오늘, 태안을 비롯한 서해안 일대에 검은 재앙이 들이닥쳤다. 맑고 푸른 바다와 고운 백사장, 기암의 해안 절벽은 하루아침에 죽음의 장소로 변했다.

쉴새 없이 밀려드는 검은 기름덩이 파도에 희망이 모두 씻겨가는 듯 했다.

사상 최악의 인재와 거친 자연환경의 이종결합 앞에서 모두들 절망했다.

그러나 그곳에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한겨울 매서운 바닷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밀려드는 기름덩이를 바가지로 퍼냈고, 돌멩이 하나하나를 닦기 시작했다.

그들은 점점 더 늘더니 거대한 인간띠를 이뤄 검은 재앙 덩어리를 퍼날랐다.

그렇게 연인원 130만 명이 기름덩이와 맞서 싸웠고,, 조금씩 조금씩 희망이 절망을 밀어내는 기적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그 희망을 그 자리에 두고두고 보존하고 싶었다.

그래서 돌멩이를 닦고, 기름덩이를 퍼나르던 그 길을 올레길로 꾸몄다.

기름의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내던 방조제 담벼락에 세계 최장의 희망메시지를 그림으로 남겼다.

사람들은 이제 다시 그 길을 걸으며 기적을 회상하고, 희망을 바라본다.

서해안 원유유출 사고 5주년을 맞아 태안의 희망을 담은 태배길과 솔향기길을 가본다.

▲ 태안 꾸지나무해수욕장 옆으로 난 솔향기길. 한겨울에도 푸른 소나무 사이로 걷는 기분이 색다르다.
생태문화 탐방로, 태안 살리는 길

태안 솔향기길은 아름다운 태안 해안선을 생태문화 탐방로로 꾸며 사철 푸른 소나무 숲을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태안 앞바다가 기름으로 뒤덮혔을 때는 이 길을 따라 수많은 자원봉사자와 기름제거 물자가 이동했다고 한다.

먼저 가장 북쪽에 있는 만대항에서 꾸지나무골에 이르는 1코스에 도착, 길을 나선다.

제주 올레길과 달리 자연길 그대로를 살려 소박한 느낌마저 든다. 푸른 소나무 숲 길을 걸으니 계절의 감각이 무뎌진다.소나무 사이로 오르락 내리락 걷다 보면, 어느새 바닷가가 펼쳐저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저 멀리 바다 가운데 솟은 작은 바위산이 보인다.

보는 장소에 따라 바위가 하나가 됐다가, 또 셋이 된다.

그래서 이름도 ‘삼형제바위’라고 한다.

용이 승천했다는 ‘용난굴’을 지나 1코스 여정을 마쳤다.

2코스는 푸른 소나무가 멋드러진 꾸지나무골 해수욕장에서 시작한다. 찬바람 부는 겨울 탓인지 길은 걷는 사람은 찾아 볼 수 없다. 거대한 소나무 숲 속에 홀로 있으니 적적할만도 하지만, 오히려 이 숲이 모두 내 차지라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길 중간 중간 낡은 철조망이 다소 위협적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갈끔한 분위기의 사목해수욕장을 지나 태안 희망벽화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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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서대 태안비행장에 주기 중인 세스나. 한서대의 협조로 태안의 바다를 하늘에서 볼 수 있었다.
태안의 희망을 세계최장 벽화로 그리다

솔향기길 제 2코스에 속하는 태안 이원방조제에는 길이 2.7㎞, 폭 7m의 세계 최장 벽화가 있다

이 벽화는 서해안 원유유출 사고 피해 복구를 기념해 제작돼 ‘태안 희망벽화’로 명명됐다.

2009년 제작된 이 희망벽화는 원유유출 사고 당시 복구 작업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130만 명을 기려 130명의 벽화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완성했다.

한적한 도로를 달리며 멀리서 바라본 이원방조제는 거대한 콘크리드 구조물이 지평선 끝까지 뻗은 듯 하다.다가갈수록 보이는 울긋불긋한 색체가 무슨 그림이 그려져 있을까 호기심을 자극한다.

가까이서 보니 그려진지 3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선명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그림도 다양하다. 바닷속 풍경, 물고기, 무지개, 꽃밭 등 구간마다 다양한 주제로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멋스러운 그림들이 이어진다.

마치 화랑에 온듯 어느새 그림 감상에 빠져들게 된다.

태안화력발전소 쪽으로 곧게 뻗은 길을 따라 가본다.

시원한 길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아주 상쾌할 것 같은 기분이다. 방조제 반대쪽으로 가자 칸칸이 나눠진 곳에 사람들의 손바닥과 이름이 질서 정연하게 찍혀있다.

전국 각지에서 태안의 회복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손바닥 5만 개라고 한다.

원래는 태안군민 6만 7000명을 기념해 숫자를 맞추려고 했지만, 여러 문제로 5만 명에 그쳤다고 해 아쉬움을 남겼다.방조제 위로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니 지난 재앙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희망벽화라는 이름 답게 그림을 보는 이에게 희망을 주는 듯 하다.

하늘에서 바라본 태안

태안 희망벽화는 그 규모가 너무 커서 지상에서는 한 눈에 볼수 없다. 그래서 특별히 한서대에 항공촬영 협조를 구해 태안의 솔향기길과 희망벽화를 하늘에서 내려다보기로 했다.

한서대 행정실의 도움을 받아 전병찬(31) 교관이 조종하는 ‘세스나172SP’에 몸을 실었다.

활주로를 이륙해 곧장 태안 희망벽화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보이는 태안의 해안선에는 하얀 파도가 일정한 간격으로 쉴세 없이 드나들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저 해안에 검은 기름이 있었고, 그것을 제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노력으로 원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았다는 사실에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든다.

그러는 사이 희망벽화에 도착했다.

2.7㎞에 이르는 그림을 하늘에서 보니 또 다른 감동이 밀려든다. 그림을 보다 자세히 보고자 고도를 낮춰 선회했다.

땅에서 보면 한 눈에 보기도 어려운 거대한 그림들이 책상 위의 그림책처럼 길게 이어져 그 의미가 새롭다.

▲ 태안 태배길 제4코스 안태배해변 가는 길. 목재 데크가 설치돼 편하게 갈수 있다.
이태백이 쉬어 갔다는 태배길

태안 태배길 코스는 5년 전 원유유출 사고 당시 가장 큰 피해을 입은 의항리 인근 반도를 둘레로 잇는 길이다. 당시 의항리 앞 바다에서 사고가 발생해 가장 먼저, 가장 많은 기름이 덮쳤다고 한다. 사고 전까지는 오솔길이었던 태배길은 당시 복구 차량이 드나들수 있도록 넓혀졌고, 다시 복원작업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그래서 태배길의 각 구간 명칭도 그 때의 고난과 극복을 잊지 않기 위해 순례길, 고난길, 복구길, 조화길, 상생길, 희망길 등 6개 테마 코스로 불린다.

태배길이란 이름은 중국의 시가 이태백이 우리나라에 왔다가 이 곳의 절경에 빠져 머물렀다는 전설에서 유래돼 ‘태백길’로 불리다가 자연스럽게 태배길이 됐다. 태배길의 전체 길이가 6.5㎞로 솔향기길 한 코스보다도 짧지만, 가는 길마다 절경과 체험장이 있어 인기는 더욱 높다.

의항항에서 시작하는 태배길은 구간에 고운 흙이 깔려 있어 걸음걸이가 편하다. 또 목제 데크와 전망대도 잘 갖춰져 있어 걷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태배길 중간 해변에 ‘독살’ 체험장을 만날 수 있다. 독살은 해안에 돌을 쌓고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나가지 못하게 해 잡는 전통 고기잡이다. 태배길을 따라 해안선 끝에 다달으니 태배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은 과거 군 소초였던 곳을 전망대로 꾸미고 내부에는 원유유출 재앙을 극복한 전시 공간이 조성됐다. 그러나 이날은 문이 굳게 잠겨 있어 아쉽지만 넓은 경관을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 길을 따라 온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저 아래 해변으로 내려가 기름을 닦아냈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태배길 중간에 새겨진 이태백의 시를 떠올리며 아직도 진행 중인 태안의 희망 찾기가 잘 마무리 되길 기대한다. “先生何日去(선생하일거) 스승은 어느 철에 다녀갔는지, 後輩探景還(후배탐경환) 문생들이 경승지를 찾아오니, 三月鵑花笑(삼월견화소) 3월의 진달래꽃 활짝 웃고, 春風滿雲山(춘풍만운산) 봄바람은 운산을 메우더라”

태안=이재형 기자 1800916@cctoday.co.kr

태안=박기명 기자 kmpark3100@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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