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아침을 환히 깨우고 정오를 붉게 태우니…용봉산의 밤은 깊다

[충남의 소설악, 홍성 용봉산]
화강암 뚫고 나온 소나무 굳센 기상 뻗쳐
억겁시간 견뎌온 거대 바위 하늘로 치솟아
정상부근 최영장군 활터 역사의 숨결 느껴

이재형 기자 1800916@cctoday.co.kr 2012년 11월 23일 금요일 제12면     승인시간 : 2012년 11월 22일 20시 07분
 
   
 
 
 
   
 
   
 
지난 봄 충남 홍성을 지나다가 차창 밖으로 본 산. 높지도 않은 것이 바위는 하늘을 찌르는 듯하고, 넓지도 않은 것이 줄기는 굽이굽이 이어졌다. ‘저 산은 도대체 무언가?’하여 물어보니 바로 용봉산(龍鳳山)이라.

문득 저 산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든다. 그러나 어느새 일상에 치이며 기회를 찾지 못하다가, 첫 눈이 내렸단 소식에 화들짝 용봉산이 떠올랐다. 단풍이 지기 전에 서둘러 계획을 잡는다. 마침 홍성군 구항면 거북이마을에 살고 있는 본보 따블뉴스 블로거 ‘길자’님, 대전의 ‘이야기캐는광부’님과 뜻이 통해 동행하게 되니 산행이 더욱 기대된다. 동행인을 설명하자면 ‘길자’ 길익균(31) 씨는 원래 서울에 있다가 지난해 육군 대위 전역 후 느닷없이 거북이마을로 귀촌한 인물이고, ‘이야기캐는광부’ 김기욱(28) 씨는 강연 및 도서 분야 파워블로거다.

◆사철 푸른 산, 최대한 천천히 걷고 싶은 산

산 초입에 이르러 올려보니 울긋불긋한 단풍은 듬성듬성할 뿐 전체적으로 푸른색이다. 산에 소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충절의 고장 홍성이라더니, 용봉산 화강암을 뚫고 나온 소나무들이 굳세게 자라고 있다. 잠시 화려한 만추가경(晩秋佳景)을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첫 눈 내린 겨울 목전에 드넓은 녹색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또 다른 힘이 난다.

드디어 산행의 시작.

산에 가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 10년 넘도록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산’이 살아난다. 코스는 산림휴양관을 출발해 최영 장군 활터를 거쳐 최고봉에 올라 악귀봉으로 돌아 내려올 예정이다. 이날 우리와 마찬가지로 처음 용봉산에 오르지만, 홍성 사람이라는 이유로 길자님이 선두를 맡는다.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갈림길, 활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활터로 오르는 코스는 바위 능선길이어서 길은 다소 험할지 모르나 시야가 매우 좋다. 아래를 보니 드넓은 홍성 들판과 바다처럼 짙푸른 하늘이 맞닿고, 옆을 보면 기암이 우리와 같이 굽이굽이 정상으로 가고 있고, 위를 보니 그 ‘높지 않지만 하늘을 찌르는’ 바위들이 줄지어 서 있다. 또 발 아래에는 새로 지어진 충남도청이 마치 손에 잡힐 듯하다. 출발한지 20분도 안되어 이렇게 경치를 감탄하게 만드는 산이 또 있었던가?

오랜만의 산행인데다 화강암을 짚고 올라가는 가파른 코스가 힘들만도 한데, 한걸음마다 달라지는 절경이 가쁜 숨 대신 감탄부터 먼저 내뱉게 한다. 모두들 연신 풍경을 찍느라 가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잠시 후 흔들바위 푯말이 나타나고 그 위에는 정말 커다란 바위가 얹힌듯이 있다. 길자님과 이야기캐는광부님이 힘을 합쳐 바위를 밀어본다.

혹시나 저 바위가 정말 굴러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하지만, 역시 그럴 일은 없었다. 그렇게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최영 장군 활터에 도착, 물 한 모금 마시고 주변을 둘러본다. 이곳에 서려있는 전설은 이렇다.

‘최영 장군이 소년 시절 애마와 내기를 했는데, 쏜 화살과 애마 중 누가 더 빠른지 시합을 해 말이 질 경우 목을 치겠다고 했다. 애마는 자신있게 끄떡였고, 최영 장군은 홍성읍 은행정 방향으로 화살을 쏘고 말을 내달렸다. 그러나 그곳에는 화살이 없었고, 최영 장군은 내기에 진 말의 목을 치니 곧 화살이 ‘쌩~’ 지나갔다. 최영 장군은 자신의 경거망동을 후회하며 말을 무덤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지금도 전해지는 금마총이다.’

말과 화살의 시합, 다른 위인의 전기에서 본 기억이 있지만 불필요한 ‘원조’ 논란은 잠시 접어둔다. 최고봉까지 0.3m 남았다는 푯말이 보인다. 한달음에 달려갈 수도 있는 거리지만, 나무와 바위와 억새가 그러지 말라 한다.

◆끝없는 기암 소설악이오 소금강이라

드디어 최고봉에 올랐다. 해발고도 381m, 다른 산에 비하면 ‘고도’라는 말이 무색할지도 모르지만, 용봉산이 품고 있는 빼어난 경치는 해발 1000m 급 험준고산과 견주어도 속색이 없다. 다만 정상에 서면 서해바다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달리 거의 안보이니 산이 낮기는 낮나보다.
   
 
최고봉에서 노적봉과 악귀봉을 거쳐 이름만으로도 그림이 그려지는 병풍바위까지 보려면 서둘러 길을 나서야 한다. 오르락 내리락 정상의 능선길을 타는데, 시야가 트일 때마다 사방으로 들어오는 기암절벽 풍경이 어찌 그리 장엄한지, 소금강, 소설악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한참을 물아에 빠져 있는데 일행 중 누군가 문득 용봉산 전설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용봉산 최고봉 옆에 투석봉이 있다. 왜 투석봉인가? 용봉산과 너머 저멀리 일월산(백월산)이 있고, 그 사이에 소향이란 아가씨가 있었다(현재 마을 이름도 소향리이다). 소향을 두고 용봉산 장군과 일월산 장군이 서로 싸움을 벌였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돌을 던진 것이다. 그런데 결국 용봉산 장군이 먼저 지쳐 일월산 장군이 던진 돌들이 수북히 쌓여 지금에 이르렀고, 소향은 일월산 장군과 연을 맺었다. 그런데 실제 현재 소향리와 일월산은 같은 행정구역이다.’

그래서일까? 용봉산에는 정말 바위들이 많고, 그 덕에 지금은 더 유명해졌다. 암벽등반이라도 해야 할 듯한 거대한 바위에는 빠짐없이 난간과 계단이 설치돼 있어 산행의 수고를 덜어준다.

노적봉에서 악귀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용봉산 절경 중 으뜸이라 하더니, 틀린말이 아니었다. 악귀봉은 그 이름에서 보여주듯 거대한 바위들이 어우러져 험란하면서도 웅장한 멋을 풍긴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니 바위 사이사이로 데크길과 계단, 전망대까지 갖춰져 있다. 전망대 한 켠에 ‘두꺼비바위’라는 안내판이 있어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저멀리 기암 틈에서 10m는 넘을 거대한 두꺼비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있다. 또 행운바위도 있다. 촛대처럼 솟은 바위 위로 잔 돌맹이들이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돌을 던져 저 위로 올리면 행운이 온다는 뜻인것 같다. 쌓여있는 돌을 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행운을 잡았겠구나 생각이 든다.

어느덧 해는 서쪽 멀리 지평선에 가까워지고 용봉산은 붉은 기운에 휩싸인다. 모두들 그 장엄한 일몰을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해가 지면 산행을 멈추고 내려가야 한다. 해발 381m의 작은 산이라 한나절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더니, 반도 못 둘러 본 셈이다. 내려오는 길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러나 후회는 없다. 오히려 다음에 올 때도 지금처럼 천천히 여유를 갖고 둘러 볼 참이다.
   
 
덧붙여 얘기하자면 이제 곧 용봉산 바로 앞에 충남도청이 들어서고 이 일대에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진다. 높지 않으면서도 빼어난 경관을 지닌 용봉산으로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인데,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사람이 산을 망가뜨리지 말고, 산이 사람을 거부하지 않도록 첫 단추를 잘 맞추길 기대한다.

글·사진 = 이재형 기자 1800916@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http://www.cc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