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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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이상한 所聞(33)

왕은 큰어머니 승평부부인 박씨 집에 잔치를 베풀어 주려 한다고 내수사(內需司)로 하여금 잔치 준비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라 분부한 후로 날마다 궂은 날씨가 개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왕은 잠시 하늘이 번할 적에 경복궁으로 인수대비를 찾아 문안을 올리고 창덕궁으로 돌아와 이제는 늦장마가 걷힐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하였으나 그것도 잠시뿐 다시 질금질금 궂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왕은 드디어 궂은 비를 무릅쓰고 날을 정하여 대궐 소주방의 숙수(熟手)들을 승평부부인 집으로 보내 잔치 음식을 장만하게 하고 그 자신이 친림하겠노라고 통고하였다. 때아닌 우중(雨中)에 소주방 숙수들을 맞은 승평부부인 집에서는 야단법석이 났다.

떡방아 소리와 기름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하였다.

"여름비는 잠비, 가을비는 떡비라더니 떡 얻어먹게 생겼구나."

"상감마마께서 우리 부부인 마님을 위해서 베푸실 잔치란다."

"누가 아니래. 히히."

노비들은 신이 나서 떠들고 까불며 맡은 일을 하느라 궁중같이 널따란 집안을 왔다갔다 하였다.

승평부부인 박씨는 안사랑에 앉아서 이래라, 저래라 하고 지휘를 하다가 안심이 안되면 몸소 과방(果房)에도 들어가 보고, 주방을 기웃거리기도 하면서 간섭을 하고 돌아다녔다. 임금이 자기를 위하여 베푸는 잔치라고 하지만 임금이 친림하여 자기 집에서 베푸는 잔치인지라 자기가 임금을 위해서 베푸는 잔치처럼 정성을 쏟지 않을 수 없었다.

낮쯤부터 비가 뜸하더니 오랜만에 구름이 벗겨지면서 푸른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어가를 옹위하고 오는 내시들의 시위(侍衛)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승평부부인 박씨는 어린 세자를 데리고 부랴부랴 솟을 대문 밖으로 달려 나왔다.

세자를 시종하기 위해 승평부부인 집에 차출(差出)되어 있는 동궁의 관원들과 내시, 궁녀들도 부리나케 대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겸사복장(兼司僕將) 휘하의 금군(禁軍)에 에워싸인 어가가 천천히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대로변에는 길 가던 백성들이 젖은 땅에 넙죽넙죽 엎드려 있었다.

이윽고 왕이 탄 어가가 솟을대문 가까이 이르렀다.

"저하! 아바마마께 승후 아뢰시오."

박씨가 어린 세자에게 가만히 말하였다.

세자는 두 손을 맞잡고 어가 위의 부왕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아바마마, 소자 승후 아뢰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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