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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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이상한 所聞(35)

"세자가 어른스럽게 의사 표시가 분명하구나. 하하하. 그래 좋다. 섣달 그믐날 제석(除夕)에 종조모(從祖母)님과 함께 입궐해서 나례를 구경하도록 해라."

"야, 신난다!"

세자는 역시 어린애답게 손뼉을 치며 좋아하였다. 그때 큰 상이 나왔다.

박씨가 왕에게 말하였다.

"전하께서 주빈(主賓)이시오니 상석(上席)에 자정하셔야 하옵니다."

"아니오. 오늘 잔치는 세자를 양육하신 큰어머님을 위로해 드리려고 내가 마련한 것이니 마땅히 큰어머님께서 상석에 앉으셔야 하오."

상석과 말석(末席)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둘이 서로 권하고 사양하다가 큰 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고 세자 황을 옆에 앉혔다.

왕은 박씨가 먼저 권주하려는 것을 막고 자기가 먼저 박씨에게 잔을 건네주고 손수 술병을 들어 술을 쳤다.

"큰어머님. 이 잔 받으시고 천세만세를 누리시오."

"전하, 그동안 신이 받은 은사(恩賜)가 거만(鋸萬)이온데, 이같이 큰 잔치까지 베풀어 주시오니 너무너무 천은이 감격하오이다."

박씨는 정말 감격을 이기지 못한 듯 목이 메고 눈물이 글썽하였다. 일찍이 청상과부가 되었지만 외롭지 않고 풍요롭게 살아온 것이 모두 왕의 은덕이었다.

밖에 비가 내리고 있어서 재인들의 연회를 구경하지 못한 대신 악공과 기생들을 너른 대청으로 불러들였다. 악공들이 풍악을 아뢰고 가무로 이름을 날리는 내한매(耐寒梅) 광한선(廣寒仙) 소남아(召男兒)등이 차례로 나와 춤과 노래로 흥을 돋웠다.

밤이 되면서 잔치놀음은 차츰 난잡해지고 질탕해져 갔다.

"동궁아, 종조모님께 헌수하여라."

"예, 아바마마."

부왕의 분부를 받은 세자는 승평부부인 박씨에게 잔을 바치고 두 손으로 술병을 들어올렸다.

"아유, 전하, 이제 그만…. 더는 못하옵니다."

박씨는 받아든 잔을 상 밑으로 감추며 사양하였다. 박씨는 이미 빨갛게 취해 있었다.

왕과 세자만이 헌수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동궁의 관원들이 차례로 들어와 헌수를 하였다. 그때마다 받은 잔을 다 마신 것은 아니었으나 박씨는 두 눈이 감길 듯 게슴츠레하니 술이 취해 있었다.

"큰어머님, 동궁의 정성이니 그 잔만 받으시오."

박씨는 흐트러진 용의(容儀)를 가다듬지 못하고 잔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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