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

3·12 대통령 탄핵 사태 후폭풍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 탄핵안 가결 당시만 해도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탄핵 지지세력인 야권은 "의회민주주의 승리"라며 득의양양(得意揚揚)한 기세를 과시했고, 여권은 "의회의 폭거"라며 실의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역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야권은 자신을 추스르기조차 힘겨운 국면을 맞고 있는 반면, 여당 쪽에선 오히려 안도의 한숨이 감지되고 있다.

이런 국면은 민심의 향배가 주도하고 있다. 탄핵 소추 이후 여론 조사 결과 탄핵? 반대 여론이 70%대에 이르면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도 역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70%대가 잘못했다고 답변하고 있다. 양비론적인 입장에서 야당이나 대통령을 준엄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민심에 비춰 본다면 탄핵을 받아야 할 대상은 바로 국회가 아닌가. 그렇다고 대통령의 지도력이 비판으로부터 자유스러운 것도 아니다. 이미 이러한 민심은 탄핵안 가결 전부터 표출돼 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려면 '전략적 수(strategic move)'가 필요했을 법하다. 이를 위해 '신뢰할 수 있는 공약(credible commitment)'으로 작년에 내놓은 게 바로 '재신임 카드'가 아닌가 여겨진다. 야당이 당초 이런 미끼에 걸려들고는 우왕좌왕할 때부터 이미 노 대통령은 승기(勝機)를 예감했다고 볼 수 있다. '선거 올인'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이 없기에 '탄핵소추' 관철이라는 결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어도 게임 이론상으로 풀이하자면 그렇다.

야권이나 여권 모두 이런 사태가 오리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항변은 어불성설이다. 그토록 '대화와 타협'을 통해 파국만은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지만 이를 외면한 결과다. 국민 정서를 외면한 채 서로 게임을 벌이다가 현직 대통령 권한정지라는 우리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사태를 암묵적으로 자초하고 만 셈이다. 노 대통령이 '파면'에 이를 만큼 중대한 위법성이 있는지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법리적인 차원에서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라 심리를 한다고는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다. 그런 점에서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기란 아직 이르다. 모두가 패자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런 와중에서 이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한달 남은 총선을 '친노·반노의 사생결단식 전쟁'으로 몰고 가는 듯한 정당 지도자들의 인식이 섬뜩하기만 하다. 건전한 시민사회 이행을 위한 논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오늘날 '찬탄(贊彈)-반탄(反彈)' 정국은 해방 이후 '찬탁(贊託)-반탁(反託)' 정국을 연상케 할 만큼 다분히 극단적인 감정 개입과 함께 이분법적인 패거리 나누기로 비약하는 조짐이 없지 않다. 민생을 챙기면서 사회 통합에 나서는 일에는 너와 내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정당의 목적이 정권 획득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주적인 기본 질서, 즉 공정한 게임 룰이나 상식 차원에서 이뤄져야만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탄핵정국에 대한 세계 언론 논조를 보더라도 엇갈린다. 한국에서 대통령 탄핵이 나올 만큼 민주화됐다는 평가와 더불어 정반대의 시각도 나오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이 난국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서 보다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거듭날 것인가라는 분수령에 서 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