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숨결 서린 금강 역사성
한국 대표역사축제 발돋움
비상하는 충청정신 살려야

# “백제,/ 천오백 년, 별로/ 오랜 세월이/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 할아버지를 생각하듯/ 몇 번 안 가서/ 백제는/ 우리 엊그제, 그끄제에/ 있다.” (신동엽, 錦江-제5장)

부여 출신 금강의 시인, 신동엽은 부소산 낙화암 바위서리에 핀 진달래에서 사랑을 읽었고, 숨결을 들었다. 어제 같은, 백제 때 꽃구름처럼 말이다. 우리 앞에 펼쳐진 오늘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흐름이고, 또 그건 미래로 연결될 것이기에 그 모두 궁극적으로는 역사성을 갖는다.

# “금강,/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기는 곳/ 바람버섯도/ 찢기우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새 씨가 된다.” (신동엽, 錦江-제23장)

저항시인, 신동엽은 금강을 따라 도도히 흐르는 역사성에 주목했다. 그는 백제 문화에 대해 부부, 자식, 부모, 이웃 간에 따스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생활의 시대(공동체)’로 극찬하면서 금강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의 희망을 담았다. 우리 가슴 속에서 뜨겁게 살아 꿈틀 거리는 그 무엇이 있기에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 백제와 금강 그리고 충청인의 상관관계란 바로 그런 구도에서 읽을 수 있다. 백제의 고도, 부여·공주 일원에서 열리고 있는 2010 세계대백제전은 화려하게 부활한 백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1400년 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금강이라는 역사무대에서 이뤄진 교감이 세계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백제 그리고 금강이 자유와 평등, 나눔과 배려라는 보편적인 문화의 원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제가 해상왕국,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중심국 지위를 누린 것은 열린 사고와 글로벌 문화 마인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백제 장인들의 손끝에서 빚어진 예술품만 해도 그게 어디 한둘 인가. 백제문화가 일본 고대문화의 원류로 일본인의 추앙을 받고 있는 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백제문화의 흔적이 일본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도 그래서다.

반면 정작 백제에서는 절터와 왕궁터, 왕릉 그리고 전설만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백제는 무능한 나라, 그래서 나(羅)·당(唐) 연합군에 의한 망국의 한(恨)조차 맘껏 토로할 수 없는 걸로 치부돼 왔다. 승자에 의해 역사가 기록된다고는 하지만 이토록 백제문화의 우수성이나 존재감이 철저히 묵살됐다는 건 역사의 또 다른 아이러니다.

이제서나마 세계대백제전이 세계적인 역사문화축제로 거듭나면서 백제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백제부활의 중심에 '백제문화단지'가 들어섰다. 백제 왕궁인 사비궁과 백제의 대표적 사찰인 능사, 계층별 주거문화를 보여주는 생활문화마을 등으로 구성돼 역사문화체험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축제를 구성하는 탄탄한 스토리텔링 마케팅도 돋보였다. 사마이야기와 사비미르는 첨단 테크니컬 시스템이 결합된 환상적인 종합무대로써 호평을 받았다. 문화콘텐츠 산업화 가능성을 제기할 만한 소재도 적지 않다. 충청인의 정체성, 더 나아가서는 한국인 모두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로도 손색이 없다. 한국 대표 역사문화 축제로 발돋움할 수 있을 걸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훌륭한 역사문화 자원을 지속적으로 관리·활용하기 위한 후속 과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E.H.Carr의 정의처럼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역사는 강물처럼 흐르고, 흐른다. 그러면서 과거의 성찰을 거쳐 내일의 전망을 다음과 같이 되묻는다.

“황폐한/ 땅에도 아침은 온다./ 아득한 평야에 새벽이 열리면/ 어디서라 없이 들려오는 가벼운 휘파람 소리,/ 물 길어 오는 아낙의 물동이 가에/ 반도의 아침이 열린다./ 냇가에선/ 일찍 깬 물새가/ 강언덕 인사를 보내며/ 이리저리 준비운동을 하고,” (신동엽, 錦江-제26장)

금강은 더 이상 망국의 한이 서린 공간만이 아니다. 비상하는 새 아침, 새 역사를 잉태하는 희망의 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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