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유난히 후덥지근하고 짜증스러운 때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 후반기 국정을 이끌고 나가야 할 총리를 비롯해 장관, 국세청장, 경찰청장 내정자 등 10명의 도덕성 및 자질이 이토록 망가져 있었던가에 대해 새삼 놀랐고, 그런 사람이 선정되기까지의 허술한 인사검증 시스템에 또 한번 분노하면서 폭염에 시달려야만 했다.

결국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어제 자진사퇴하기에 이르렀고,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내정자 또한 그 뒤를 이은 것은 이미 예정된 수순에 불과하다.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도 그들에 비하면 한치도 나을 게 없다. 이들을 뺀 나머지 인사들에게도 흠결이 없는 건 아니다. 당사자 자신의 자진사퇴가 됐건 아니면 대통령의 임명철회가 됐건 인사 후유증이 어디까지 미칠지 두고 볼 일이다.

자칫 '거짓말 내각' '위장전입 내각'으로 낙인찍힐 위기를 일단 넘겼다고 안도할 일이 아니다. 그간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문제점이 한둘 아닌 탓이다. 자고나면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은 예사로운 게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김 총리 후보자는 순간 모면식으로 말 바꾸기를 일삼았다. "까도 까도 나올 게 없다"던 그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석연치 않은 거짓말 행진으로 인해 '양파 총리' '비듬 총리' '스폰서 총리'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국민의 눈높이 정서를 무시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건가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인사청문회 결과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병역기피'+'논문표절'로부터 자유로운 인사가 드물었던 건 기이한 일이다. 청문회에서 자신의 의혹이 드러날 때마다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는 그들에게서 무얼 배울 것인가. 집권 초 '강부자' '고소영' 'S라인' 내각이라는 놀림을 당할 때부터 뭔가 달라졌어야 했다.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도 그와 유사한 논란을 답습했다는 건 여러모로 따져 봐도 이해하기 힘들다.

여권이 머쓱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의혹만 부풀린 책임을 야권에 돌렸던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인사청문회에서 내정자들을 지나치게 감싸고 돈 여당 국회의원들의 편향적인 행태가 덧붙여져서 민심이반의 결정타를 자초했기 때문이다. 총리는 살리는 대신 그 밖의 내정자 몇 명만 낙마시키는 이른바 여당의 '김태호 빅딜'이 여론으로부터 집중 질타를 받았다. 인사청문회를 저잣거리의 그 무엇인양 흥정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여권 술수가 백일하에 드러났으니 민심이 가만있을 리 만무하다.

젊은 총리를 내세워 세대교체, 소통, 친서민 국정을 수행하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물론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캐머런 영국 총리,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서 보듯이 세대교체 바람으로 어느 정도 긍정적인 정치문화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내부에 어떤 의욕만 앞섰을 뿐 인재 발탁 검증시스템에 도사린 치명적인 고장은 애써 모른 척 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게 옳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이토록 형편없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천명한 꼴이 되고 말았다. 얼마 전 원칙을 무시한 채 무더기로 대통령 특별사면이 이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 無權有罪)라는 말이 나돌 지경이다. 국격(國格), 법치, 친서민 중도실용, 공정한 사회 운운하는 것 그 자체가 아이러니라는 지적이 보수층에서도 나온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인문학 서적이 유독 한국에서 인기리에 읽히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건 우리 스스로에 묻는 엄중한 화두이자 참다운 정의를 찾아가는 시대적인 흐름으로 봐야 한다. 사회지도층에 요구하는 국민의 '도덕성 수준'이 날로 높아져 가고 있는 근원을 살피면 바로 거기에서 해답의 실마리도 풀린다. 후임자의 신언서판(身言書判)에 또 한차례 국민적인 이목이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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