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 더위 속에서 열 받는 일은 없어야 할 터인데 조짐이 썩 좋지 않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벌써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어서다. 파워엘리트들이 시정잡배보다 뒤떨어진 품성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을 때 가장 분노하는 계층은 누구일까. 일반 서민들이다. 탈·불법을 감추다가 들통이 나거나 대수롭지 않는 듯 뻔뻔한 태도를 보일 경우 그 배신감은 더욱 커진다.

개인의 자질 및 도덕성, 전문성에 의구심을 살만한 인사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청문회 때마다 나온 단골 메뉴는 위장전입, 병역기피,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금품 수수 의혹 등이다. 위장전입만 봐도 예사롭지 않다. 신재민 문화부장관 내정자, 이현동 국세청장 내정자,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가 입질에 올랐다. 이인복 대법관 후보자도 엊그제 청문회에서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났다. 당사자 모두 이를 시인하고 사과를 했다. 그러니 눈 딱 감고 넘어가 달라고 한다.

국민의 법 감정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위장전입은 전형적인 화이트칼라 범죄유형에 속한다. 주민등록법상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처할 만큼 죄질이 가볍지 않다. 좋은 학군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서 또는 부동산 투기를 위해서 그랬건 마찬가지다. 실제 거주지를 옮기지도 않고 서류상으로 주소만 바꾸는 건 비겁한 짓이다. '공정한 게임의 룰'을 무너뜨리고 특정혜택을 불법 독점할 수야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 출범이래 위장전입 쯤이야 관용하는 풍조가 만연돼 있다. 국회 청문회를 통해 소득세 탈루, 부동산 차명거래 등의 사실이 드러나도 장관에 임용됐다. 그러고도 국민에겐 준법정신을 강조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전 정권에서 장상·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 이헌재 경제부총리 후보자 등이 위장전입 탓에 탈락됐던 사례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왜 그런가. 규범과 절차는 무시된 반면 허위의식에 길들여진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시도 때도 없이 거짓과 망언이 횡행한다.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가 세치 혀 때문에 곤경에 빠졌다. 그는 지난 3월 말 한 특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과 차명계좌 연루설을 주장한데 이어 천안함 유가족을 동물에 비유함으로써 "양아치만도 못한 행태"라는 비판과 함께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 타인 삶의 가치를 배려하는 여유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기본적인 양심은 사치스러운 것에 불과한 듯하다. 가장무도회에서 조명을 향해 돌진하면서 춤추는 가녀린 군상(群像)과 다를 바 없다. 권력의 주변에 숨어서 무고한 시민들을 등치는 세상이다. 공권력을 사유물인양 행사한 혐의가 짙은데도 그 몸통은 오리무중이다.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조직적으로 훼손한 흔적을 찾고도 그 배후를 가려내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얼마 전 '한국의 선진화 수준'을 보면 그 실상과 일치한다. OECD 30개 회원국 중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30위), 사회안전망(30위), 정치적 비전(30위)이 꼴찌다. 사회적 대화(29위), 약자보호(29위), 표현의 자유(28위)도 최하위권에 그쳤다. 보수의 가치가 사회의 안녕과 질서, 위험사회로부터 안전, 사회적인 신뢰 확보에 있을진대 그와는 거꾸로 가는 세태에 경종을 줄만한 계기가 필요하다.

때마침 이 대통령이 어제 광복절을 맞아 '공정한 사회'라는 가치는 우리의 '선진화의 윤리적실천적 인프라'라고 규정했다. 백번 들어도 맞는 말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근간은 바로 '공정성'과 '자율성'의 바탕을 벗어날 수가 없다. 아무리 말로만 떠들어 봤자 백년하청이다. 실천적인 솔선수범은 고위층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