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명박 정부의 처지가 참으로 난감해졌다. 6·2지방선거 참패, 세종시 수정안 국회 부결로 정권의 리더십에 손상을 입은 마당에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까지 불거졌으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공안통치의 망령을 연상케 한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무원들에겐 '암행어사' 또는 '저승사자'로 통한다. 공직자 사정·감찰을 벌이는 특수조직이므로 보다 엄격한 처신이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 조직이 국무총리실 산하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비선조직인양 비쳐졌다는 게 문제다. 조직의 본래 목적 및 기능에서 벗어날 소지를 안고 있는 셈이다. 직권을 남용할 경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건가는 불문가지다. 영장도 없이 회사서류를 압수한 대목에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나쁜 권력'이 한 순간에 '무고한 시민'을 망가뜨리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여러모로 살펴봤을 때 의혹을 살만하다. 조직 책임자는 대통령의 동향출신이며 청와대 관련인사 또한 그러하다. 사정기관을 경북 포항 출신 중심 사조직처럼 구성·운영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배경이다. 직제상 공식 보고라인에 있는 총리, 총리실장은 뒤로 제쳐두고 사정업무와 무관한 청와대 특정인사에게 직접 보고해야 할 이유라도 있나.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한둘 아니다. 그러니 '나치 친위대'니 '제2의 하나회'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닌가.

특정인맥이 정보를 독점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에 취해 비틀거리면 어떻게 될까. 정권안보를 위해서라면 인권이나 민주적인 가치 따위는 가리지 않는다. 이를 마구 유린하기 일쑤이고, 사리사욕에 눈 먼 나머지 비리의 수렁에 쉽게 빠지게 돼 있다. 지난날 정권이 그랬다. 정권말기에 이를수록 그런 성향이 심해진다. 정권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던 부끄러운 과거를 더 이상 들먹일 것도 없다. 권력이란 견제 받지 않으면 부패하게 돼 있다. 권력의 사유화(私有化)를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특정지역 인맥 중심의 조직 운영상 문제가 비단 이 뿐이겠나. 이미 정권 출범 초부터 이에 대한 경고음이 정치권 주변에서 심심찮게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특정 지연이나 학연 중심으로 조직이 운영될 경우 주변의 눈길이 곱지 않은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2008년 11월 '영포목우회 송년의 밤' 행사 당시 유력인사의 파벌조장 발언에 대해 여론의 질타가 이어진 것도 그래서였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의 영향력에 빗대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말이 나돈 것도 이러한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G20 정상회의 개최국인 우리가 이런 논란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럽다. 권력기관의 민간 사찰 논란은 이번뿐만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경찰 고문 사실도 드러났다.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평가한 우리나라의 2009년 세계언론자유지수는 전체 171개국 중 69위에 그쳤다. 탄자지아(63위) 등 아프리카 국가보다도 낮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가의 품위와도 연관된 문제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정권 차원의 게이트로 몰고 가려는 야권의 의도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 전반의 수준을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성숙한 모습을 정립하려는 계기로 삼을 수만 있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사안의 진상을 밝힐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책임자 문책도 필수적이다. 말썽의 소지를 근원적으로 뿌리 뽑는 게 상책이다. 이에 대한 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인적교체 및 국정쇄신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집권 후반기를 맞아 국가권력의 누수를 막고 민생을 살피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기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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