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옥 칼럼

세종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일단 중대국면을 맞은 건만은 분명하다. 6·2지방선거에서 충청권 민심이 이끈 결과다. 세종시 원안추진 공약을 내세운 야당 후보들이 대전, 충남·북 광역단체장 3곳 모두를 석권했다. 2006년 당시엔 한나라당이 모두 그 자리를 차지했었다. 정치적인 의미가 작지 않다.

현 정권 출범이래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은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갈등 국면만을 양산해왔다. 충청권이 논란의 중심지에 서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지역민이 느끼는 참담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매일 매일 날벼락을 맞는 꼴이다. 자존심만 구겼다. 소모적인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계량하기조차 힘들다.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상실한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 리가 없다. 지난 정권에서 결정·추진되고 있는 국책사업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뒤엎는 게 과연 도리에 맞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도 여전하다. 한마디로 문제제기 방법으로부터 해결방식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허점투성이었다.

책임 있는 정권이라면 이제라도 세종시 수정안을 포기하는 이른바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14일 담화에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것도 그래서였다. 대통령이 제시한 '세종시 수정안 국회 표결처리방안'을 정치권이 받아들인 것 또한 그런 맥락과 같이 한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표결처리하는 방식, 다시 말하면 상임위에서 세종시 수정법안을 폐기함으로써 논쟁을 일단락 짓고 세종시 원안을 추진하는 걸로 국민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지경이다. 한나라당이 상임위에서 수정안이 부결되더라도 이를 본회의에 상정할 것이라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야당은 여야 합의 내용을 이제 와서 어길 것이냐고 반발한다.

의원들의 표결 '찬반 기록'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는 한나라당 주장은 함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세종시 찬반 논의의 실체와 핵심내용은 이미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제정과정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런데도 '역사적 책임론'을 거론한다. 그건 세종시 수정안 반대 세력인 친박계를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2012년 총선 공천 자료 활용설도 나돈다. 본회의 표결 찬성을 유도하는 협박이나 다를 바 없다. 현재 한나라당 당론은 세종시 원안 찬성으로 돼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억지로 짜맞추다보면 자꾸 헷갈리는 법이다.

그러고도 차기 보수정권을 창출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8일 "차기 대권주자나 대통령이 세종시로 인해 불편함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종시 수정을 추진했던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곧 집권 하반기로 접어든다. 조급한 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럴수록 민심과 소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왜 수정안이 국민지지를 받지 못했던가를 겸허하게 되돌아보기는 게 순서다. 설득과 절차상의 문제도 많았다. 게다가 지역균형발전전략은 역대 정권에서 반세기동안 존중돼온 가치다. 수도권엔 사람, 돈, 권력 모두가 집중된 반면, 지방은 공동화되는 현실을 마냥 방치할 수 없는 탓이다. 수도권 일극주의자들의 경우 나만 옳고 너희들은 모두 그르다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구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사태가 이지경이 되도록 만든 장본인들이 책임감을 느끼는 게 순리다.

후진 사회일수록 자기 편한대로 생각하고 밀어붙인다. 그러면서도 국익, 역사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운다. 거기에 따르지 않으면 역적이 되고 만다. 무슨 대화와 타협이나 상생의 미덕이 숨 쉬는 여지나 있겠나. 중국고사를 인용할 것도 없다. 민심은 끊임없이 낮은 대로 흐르다가 넘치면 배도 뒤집는다. 세종시 원안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게 이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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