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고문

정운찬 총리 거취 논란을 보는 지역민의 심정은 사뭇 착잡하다. 지방선거에서의 여권 패배 책임을 지고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와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일찌감치 사퇴의사를 밝힌 터다. 이와는 상반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는 정 총리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 총리의 사퇴 불가피론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정치 역학관계상 그 속내는 복잡하게 꼬여 있다. 정 총리의 사의 표명여부를 둘러싸고 청와대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도 바로 그런 데서 나온 것이다. 핵심을 보면, 비록 정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더라도 청와대는 이를 수리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간파할 수 있다. 그래선지 정 총리는 총리직을 일단 유지하면서 민심 수습과 국정 챙기기에 나설 뜻임을 연일 거듭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 결과에 대한 민심 수습책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식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그건 인사쇄신, 국정운영 전반 쇄신이라는 두가지 축에서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게 통례이다. 정 총리 책임론이 부각되는 것은 세종시 수정 총대를 멘 총리라는 점에서 당위성을 지닌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정 총리 평소 발언을 상기해봐야 한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관련 법안만도 5개에 이른다. 애초부터 밀어붙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여당 내 당론 변경이 이뤄지지도 않는 상태에서 관련 법안이 국회에 상정된 것 그 자체가 아이러니로 남게 됐다. 이제 지방선거 결과 세종시 수정안 추진 동력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봐야 옳다.

세종시 문제 당사자인 충청권의 민심은 선거 결과에서 또 다시 확연하게 드러냈다. 세종시 원안 추진을 약속한 대전, 충남·북 시·도지사 후보들이 모두 석권했다는 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민선 4대에서 3개 시·도 모두 한나라당 출신이 차지한 것과 크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한 정부 반응이 나와야만 한다. 민심을 겸허히 수용하는 수밖에 별다른 대안이란 있을 수 없다. 더 이상 결정을 미룰 경우 국정운영 전반에 힘을 받기 어렵게 돼 있다.

돌이켜 보면, 정 총리에 대한 지역민의 애증 구도는 총리 지명 때부터 이미 설정돼 있었다. 지난해 9월 총리 취임이후 충청권을 12번이나 찾았다. 역대 어느 총리가 이처럼 집중 방문한 전례가 없었다. 그래서 '세종시 총리'로 불린다. 지역출신 총리라면 충청지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환영을 받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입에 담지 못할 야유 그리고 계란세례를 받아야만 하는 처지였다.

정 총리가 세종시 수정론에 집착할수록 일은 자꾸만 꼬여 갔다. 솔직담백한 그의 평소 언행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천안함 유족을 만난자리에서 "잘못된 약속도 막 지키려고 하는 여자가 있는데 누군지 아시느냐"는 발언으로 파문을 자초했다. 때로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 읍소하는 듯한 발언도 나왔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우왕좌왕하는 그의 행보는 현 권력과 차기권력 구도 속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게 돼 있다. 서울대 총장 출신, 한국 대표 경제학자이며 유력대권 후보군에 포함됐던 그의 명성이 아깝다. 시중의 조롱 또한 험악하다. 총리직의 무게와 어울리지 않은 데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세종시 수정론으로 고향민심을 달래고 수도권 지지기반을 확보하려던 의도는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그의 책임론은 지방선거 이전부터 제기된 문제다. 공직자일수록 진퇴가 분명해야 한다. 머물 곳에 머물고 떠날 때를 아는 것, 그래야 대과없이 인생의 한 부분을 마무리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의 경구(警句)는 그렇게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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