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

올 설 민심이 남긴 최대 화두는 "우리의 정치, 아직 희망은 있는가?"에 모아진다. 연휴 내내 휘몰아치던 북풍한설(北風寒雪)만큼이나 민심도 꽁꽁 얼어붙었다. "먹고 살기조차 힘들다"는 푸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데도 정치권마저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지 못한 탓이다. 제 몫을 못하는 정치 엘리트에 대한 물갈이 요구는 이미 시대적인 흐름으로 자리잡혀 가고 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밥그릇 챙기기에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정치 현실은 미국 심리학자이자 외과의사인 스펜서 존슨이 자신의 저서인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설정한 상황을 연상케 한다. 이 책에선 생쥐 두 마리와 '헴', 그리고 '허'라는 꼬마인간 2명이 우여곡절 끝에 치즈를 마음껏 먹으면서 행복한 삶을 누리던 중 치즈가 갑자기 없어지자 각자 대처하는 방식을 우화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즉각 새 치즈를 찾아 나선 생쥐, 꼼짝도 않은 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며 불평만 하는 인간, 엄청난 현실을 뒤늦게 인식한 나머지 두려움을 안고 새 치즈를 찾아 나서는 또 다른 인간의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

결국 이 작품에 등장한 치즈, 그것은 인간에게 포만감을 주는 행복과 성공이 담긴 이상향이다. 이를테면 일부 정치인이라고 믿고 싶지만, 정치 자체를 '국민에 대한 봉사'라기보다는 '빗나간 권력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게 문제다. 권력의 사용화(私用化)가 남긴 폐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정당 역시 공당(公黨)이라기보다는 마피아의 생리를 닮았다. 사실 곰곰이 따져 보면 한나라당의 '차떼기'니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추한 몰골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온 산물이다.

정경(政經)의 검은 커넥션은 국가를 송두리째 거덜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치권 당사자들이 서로 남의 탓만을 하는 도덕관념이 참으로 한심하다. "불법 정치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도 그렇고 청문회 카드를 들고 나온 야당 역시 '오십보 백보',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 소도둑과 닭서리는 모두 도둑이기는 마찬가지일진데 이를 구분하자고 강변하는 격이다. 정치인 물갈이론은 정치권이 자초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물론 정치자금 부문에 있어선 지난 시절보다는 투명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수천억원 비자금 사건,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가신들의 정치자금 수뢰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치권력의 정통성이 취약하면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검은 돈의 위력이 커지게 마련이다. 이제 국민의 정치의식도 함양된 가운데 대선 자금 수사나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를 계기로 정치권에 새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이를 두고 국정 리더십 부족 논란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분명 우리에겐 시민사회의 성숙이라는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새로운 시대를 예고해 준다.

오는 4월 총선에선 민심이라는 큰 지렛대가 작용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정치권은 고단한 삶에 지친 국민이 무얼 원하는지를 이번 설 연휴를 통해 확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더욱 자명해진다. 낡은 관행에 찌든 정치제도와 인물을 과감히 청산하고 지식정보화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기풍을 선보여야 할 것이다. 총선만을 의식한 일회성 이벤트로 여길 처지가 아니다. 21세기 미래사회의 키워드는 한마디로 '변화'다. 변화는 두려움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숱한 처방도 나와 있다. "아빠는 1분이라는 짧은 대화를 통해 자녀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스펜서 존슨의 주장이 우리 정치권에선 통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