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고에 1:29:300이라는 '하인리히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 한건의 대형사건이 터지기에 앞서 이와 유사한 소형사고 29건이 있었고, 비록 사고로는 연결되지 않았지만 그럴 만한 징후가 300건 발견됐다는 게 그 요지다. 통계상 이론이지만 위기상황 관리의 마인드가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이를 미리 감지하고 대비하는 건 위기관리 리더십에서 나온다. 군 지휘체계가 마비된 상태에서는 어떤 작전이나 군령(軍令)이라도 먹혀들지 않는다. 사고발생 사실을 거의 한 시간 가까운 뒤에 알았을 정도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비록 천안함 사고의 원인으로 '북한 어뢰'를 확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역설적으로 보면 우리의 안방인 서해를 북한군에게 내주었음을 실토하는 꼴이다.

북한 잠수정이 천안함에 근접, 어뢰를 발사·침몰시켰다고 하자. 침몰하는 순간까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몰랐다. 북한 잠수정이 도망·귀환할 때까지도 그랬다. 서해 지형상 북한 기습은 상상하지도 못했다고 후회해본들 뭣하랴. 어떤 이유로든 변명할 길이 없다. 심상치 않은 북한의 동향 몇 가지 신호를 사전에 알고도 경계에 소홀한 탓이었다. 책임자 문책의 범위는 더욱 넓어질 수밖에 없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손자는 지지 않을 곳(不敗之地)에서 싸우면 된다고 했다. 군이 경계에 실패할 경우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건 이미 지는 게임을 하는 거나 다를 바 없다. 로마군에게 전쟁에서 패하는 건 용서할 수 있어도 매뉴얼, 군령(軍令) 위반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던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칼(무력)이 원칙도 없이 행사되다보면 필시 그 자신들에게도 독이 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천안함 사고는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사고 현장에서 수거한 북한 어뢰 뒷부분 추진기가 결정적인 물증(smoking gun)으로 제시됐다. 처음 '스모킹 건'이라는 말이 지난 달 초 당국자 입으로부터 흘러 나왔을 때만 해도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 예컨대 관련 북한 잠수함의 이동 및 작전 전후 상황까지도 구체적이고도 객관적인 증거를 뒷받침할 걸로 기대했었다.

지구촌 상공에서 샅샅이 내려다볼 수 있는 정보 강국 미국이 있기에, 더구나 사고 전후로 한미 간의 대규모 합동해상 훈련이 서해상에서 펼쳐지고 있었기에 그게 가능할 걸로 믿었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북한 잠수함에서 어뢰를 발사한 것인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정황상 정보를 종합해 볼때 연어급 잠수함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로마제국 건설 이유, 원인과 경과, 패망에 이르는 과정을 소상하게 그리고 있다. 그는 로마인의 법과 제도, 그리고 시민의식에 주목했다. 로마의 강력한 군사력을 '매뉴얼'로부터 찾았던 것도 바로 이런 인식에서다. 체계적인 군사제도와 이를 유지·발전시켜온 전술적 지식관리 마인드가 바로 그것이다. 위기별 처리지침을 표준화해서 미리 마련해두는 일 못지않게 이에 대한 실행력 확보가 중요함은 물론이다.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 현장조치 행동 매뉴얼 등을 마련해놓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매뉴얼을 전술적으로 관리하려는 마인드가 희박하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정보전쟁에서도 우월한 지위를 누릴 수 있겠나.

우리 안보상 허점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그대로 드러내주는 사례로 기록될만하다. 국가안보는 국가의 미래, 국민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 정말 이래도 되는지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다. 우리의 아들 46명이 채 꽃 피우지도 전에 북한 만행 앞에서 그렇게 스러져 갔기에 우리의 마음은 더욱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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