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스폰서' '지자체장 비리'는 어둠 속 끼리끼리 문화의 산물
글로벌 기준에 걸맞는 國格을

공직사회의 비리와 부적절한 관행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하나는 '검찰의 스폰서 파문'이요, 또 하나는 '자치단체장들의 비리'를 들 수 있다. 한 가지 공통적인 사실은 권력 주변에 기생하는 토착비리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온정주의 문화와도 무관치 않다. 기득권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면 혈연·지연·학연도 모자라 거기에다 +알파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배타적인 동족 개념만이 넘쳐날 뿐이다. '형님-아우'라는 끼리끼리 문화에 물든 사회에선 글로벌 규범이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의 뿌리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서구 언론은 이를 정실(情實)자본주의로 분류, 조롱했었다. 세상은 참 좁다. 1960년대 하버드대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6단계 분리법칙'을 체계화시켰다. 서로 모르는 사이일지라도 6 사람만 거치면 미국내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우리나라에선 3.5명만 통하면 모두 아는 관계라는 몇 년 전 실증적인 자료도 나와 있다. 요즘처럼 개방과 참여, 공유·협력시스템으로 엮어지는 IT 패러다임 속에선 이제 몇단계가 아닌 1단계로 좁혀지고 있다. 이런 구도아래서 더 쉽게 부패하는 권력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권력이 한눈을 파는 사이 그 틈바구니를 여지없이 파고드는 건 달콤한 유혹의 손길이다.

검사들의 향응·성 접대 파문도 그런 유형의 하나일 따름이다.

검찰 스폰서 노릇을 25년 동안 해왔다는 경남의 한 업자의 폭로내용을 보면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해당 검사만 해도 200여명에 이르고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1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에 앞서 검찰 스폰서문화의 실체가 아직도 온존하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1999년 대전법조비리 사건의 파장은 아직도 생생하다. 법원·검찰의 전 현직 간부 등을 상대로 소개비와 알선료 조로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사건이다. 검사장 2명을 포함, 6명이 사표를 냈고 7명이 징계를 받았다. 지역사회를 뒤흔든 이 사건으로 법조계에선 자정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맞는 듯했다. 그러나 그 때뿐이다. 2006년 법조브로커 김흥수 사건, 2007년 브로커 윤상림 사건, 2005년 안기부 X파일 의혹, 2007년 '삼성 떡값' 의혹, 박연차 리스트 등에서 보듯이 어둠 속의 뒷거래 문화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올바른 검찰권의 행사 여부를 스스로 점검·자성하는 기회 못지않게 외부의 감시 역량 또한 강화돼야 한다. 검찰은 국가공권력의 상징으로 꼽힌다. 검사는 공익을 대표해 정의를 구현하는 지위를 부여받는다.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독점권을 동시에 부여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공정한 입장에서 사회비리를 척결, 법의 엄정함을 일깨우기 위해선 사명감이 그만큼 막중하다는 뜻이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 인권을 옹호하는 것도 검찰의 몫이다.

기실 따지고 보면 토착비리라는 것은 우리 사회의 뒤틀린 풍토가 꾸준히 만들어낸 적폐(積弊)다. 감사원이 지역토착 비리 사례로 발표한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행각은 이미 갈 데까지 간 비리의 전형을 연상케 한다. 예산 집행권과 인사권, 각종 사업의 인허가·승인권 등 단체장의 막강한 권한을 이용, 더러운 재물을 마구 긁어모았다. 집행부와 한통속인 지방의회에게서 무얼 기대할 건가. 모두가 방관자이었던 셈이다. 유권자도 그런 저질 단체장을 뽑았으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세계는 하나의 공동체적인 개방사회로 이행해 가고 있다. 우리에게도 글로벌스탠다드에 걸맞은 사고방식이나 행동패턴이 요구된다. 국격(國格)을 논하면서도 권력주변의 비리나 잘못된 관행을 척결하지 못한다는 건 우리의 심장을 스스로 겨누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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