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불명, 분노와 안타까움만
희생자 가족아픔 어루만져 줄 국가적 배려·관심 모색할 때다

천안함이 백령도 앞바다에서 침몰한지 2주를 넘겼다. 어둡고 추운 해저 속에 갇힌 실종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 마음은 한결 같다. 성난 파고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실종자 수색 및 구조 활동에 나섰던 해군 요원, 민간 선원 등 10명이 끝내 참변을 당했다. 실종자 및 희생자 가족들의 심정은 그 무엇으로도 형언키 어렵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초조와 걱정 그리고 안타까움이 깊어지면서 분노와 개탄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누가 이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었는가? 천안함 생존 장병 57명은 마음이 편치 않다. 불안과 불면증, 악몽. 죄책감에 시달리는 장병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어쩌면 평생 동안 비극의 그 순간과의 전쟁을 벌여야 할 처지다. "살아 돌아 와서 미안하다"는 이들의 외침이 실종자 가족들의 뼛속까지 저미게 한다. 가족들의 아픔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길이 없다.

불신은 사소한 데서 싹튼다. 사고 발생 시점에 대한 군의 말바꾸기는 의혹만 부풀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사고 원인에서부터 초동 대응력, 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 실종자 수색 및 구조 작업 등 일련의 과정에서 드러난 무능과 시스템 부재를 탓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군 최고 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된 시각은 사고 발생 시점으로부터 무려 28분이 지나서였다. 국가안보위기의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청와대에서 국가안보회의가 잇따라 열렸지만 민심을 안정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회의에서는 "초기 대응이 잘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민심이 가만 있을리 만무하다. 급기야는 대통령을 비롯해 국가안보회의에 참여한 주요 인사들의 병역미필 문제에 불똥이 튀기에 이르렀다. 군대 갔다 오지 않은 사람들이 뭘 안다고? 민심은 그렇게 단순하게 규정해버리고 만다. 그래도 막상 당자자들은 억울하더라도 감수할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해군 홈페이지에 올랐던 어느 실종자 가족의 글이 귓전을 때린다. "이를 악다물고 돈을 모으겠다", "그 돈으로 소위 '빽'을 사야 한다면 살 것이고 유학이라도 보내서 영주권을 따야 된다면 그리 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 '무능한 부모'의 한탄처럼 들린다. 그래서 자식 잃은 설움이 더 큰지도 모를 일이다. 병역 면제자를 '신(神)의 아들'이라고 했던가. 병역의무의 본질, 애국심의 발로는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궁극적으로는 국가는 개인을 위해 무얼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축약시킬 수 있다.

문제는 간단하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국민의 자존·명예와 안녕을 지켜줄 수 있는 일체의 목표와 과정을 매뉴얼화-실천하는 시스템을 완비하고 있어야 한다. 군대 조직이야말로 국가위기를 신속·정확하게 제압·탈출할 수 있어야 하고 평소에는 사전예방을 위한 일련의 전투력 배양에 꾸준하게 임해야 한다. 첨단과학화로 무장된 현대전에서 승패는 각 주체가 유기적인 체제아래 일사분란하게 작동하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판가름 난다.

천안함의 인양작업이 이르면 이번 주말께나 완료될 것으로 보여 사고 원인규명 작업도 늦춰질 것 같다. 현재로선 사고 원인이 어뢰나 기뢰 쪽에 기우는 듯 하나 아직 단정할 수는 없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라도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사고 원인에 따라 책임 수준 및 범위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그게 불가항력적이었나 그렇지 않으면 인재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느냐에 따라 책임 수준 및 소재 결정의 단서가 될 것이다.

추후 사고 예방의 전범으로 삼기 위해서라도 국가 위기예방을 위한 매뉴얼을 전면 재검토해야 마땅하다. 북한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그에 따른 후속 조치 또한 국제적 역학관계와 연관된 미묘한 문제로 비화될 소지를 안고 있다. 많은 국민과 세계가 그 과정을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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