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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나를 돌아보며

십오척 담장안 혹한기에도 불구하고 공놀이를 즐기고 있는 동료 재소자들의 모습이 창문너머에서 아른거린다.움직이는 동료들의 모습이 뿌연 창에 가려져 흐릿하게 멀어져간다.

문득 지금까지 실아온 나의 회색빛 과거가 머리를 스친다. 「요시찰 인물,법무부 문제수」 나는 처음부터 문제수라는 이름으로 교도소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공권력에 대한 불만을 소화하지 못하고 터트리면서 그때부터 문제수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가게 된다. 재판결과 중형이 확정되면서부터 나의 장밋빛 인생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주변의 모든 직원들이 하는 일 모두가 나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목욕시간이나 면회시간과 운동시간등이 적다고 따지기 일쑤였고 재소자에 대한 처우도 엉망인 것처럼 보였다.

그때마다 사사건건 시비하여 살아가는 것을 낙으로 삼을 정도로 나의 일과는 싸움으로 시작해서 끝을 맺었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다보니 다른 교도소의 이송이 시작되게 됐고 빠르면 3개월, 조금길면 6개월에 한번씩 이송을 다니게 되었다.

그럴때마다 사회에 두고온 사랑하는 핏덩이 어린 딸 걱정 때문에 수면제나 진통제를 한웅큼 털어놓고 잠을 청했다. 모든 정신과 육체는 썩어가고 있을지언정 강인한 정신력과 투철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혹독한?추위에도?냉수 목욕을 하기도 했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그날까지 완벽한 문제수로 살아가기 위해서 철저한 수업 쌓기를 「5년」. 이젠 전국 교도소 어디를 가더라도 내 이름 석자만 대면 모르는 교도관이 없을정도로 유명한 문제수가 되었다. 그런데 대전교도소로 이송되던날 뜻하지 않은 이변이 생겼다. 그날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사랑한다」 는 말 한마디를 던지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대전교도소 송의용 보안과장이었다. 숱한 교도소 교도직원들의 손을 잡아 봤지만 그토록 따뜻한 손길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따뜻한 손 한번 잡아 보았다고 꽁꽁 얼어붙은 내마음이 쉽게 녹아지지는 않았다. 모두가 위선으로만 보였다.실제로 옮겨가는 교도소마다 수많은 직원과 수많은 재소자들한테 많은 속임을 당하고 살아왔던 터라 믿고 싶지도 않았고 아예 믿음을 주지 않았다.

그런 나의 냉랭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송과장은 하루에도 몇번씩 나를 찾아주었고, 때로는 출근시간도 아닌 이른 새벽에도 찾아와 내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처음에는 그저 형식적이겠지 또 저러다 시간이 지나면 말겠지 하고 있을 때 하루는 나에게 『우린 서로 옷 색깔만 다를뿐이고 제복만 바꿔 입었을 뿐이지 똑같은 인간이고 사내들이다.그러니 이젠 마음속에 차곡히 쌓아둔 미움의 벽을 허물고 진솔하게 대화를 해보자』하셨다.그분은 아버지나 형님께서 나를 꾸중하시는 것 같았다.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엄하게 아픈곳과 힘든 것을 구분해 나를 두드려 주시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열리고 믿음이 커지면서 난 그동안 지은 과거의 죄를 뉘우치게 됐다. 더욱이 교도관들이 딸아이 문제를 고민하는것을 알고 타교도소로의 이송을 막고 교화름 한 사실을 알았을 때 난 참회의 눈물마저 흘렀다. 새천년 이제 사회인이 되면 남을 돕는 사람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하며 김혜순님과, 교무계장, 교도관들에게 감사드린다.

강○○ (대전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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