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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10여대 가득 1주일간 싣고와 구덩이 파는대로 총살"

■「정치범 학살」목격한 大田산내주민들 증언
국방부, 문서확인 나서

<속보>=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군경이 당시 대전형무소에 수감중이던 정치범 수천명을 산내 마을 뒷산인 골령산 계곡에서 처형했다고 낭월동 주민들이 진술했다.

주민들은 대한 청년단과 의용 소방대등이 골령산 아래 밭에 수로같은 큰 구덩이를 판뒤 이어 군경 트럭이 손을 뒤로 묶인 사람들을 가득 싣고와 사살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총살된 사람들은 한번에 5-6대에서 많게는 10여대의 트럭적재함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2-3단씩 실려 있었고 그위에 무장한 군인과 경찰이 타고 있었으며 총성이 일주일 정도 계속됐다고 덧불였다.

이모씨(62)와 한모씨(70)는 총소리가 나 산내 초등학교 뒷산에서 현장을 보았는데 처음에 30여명은 구덩이 앞에서 재판을 받고 종교의식을 치른뒤 총살됐으나 이후에는 구덩이를 파는 대로 총살됐다고 말했다.

주민 김모씨(82)는 마을 이장을 따라 골령산 계곡에서 이틀간 깊이 2m, 폭 3m정도 크기의 구덩이를 팠으며 군인들이 끌고온 사람들을 사살하면 흙으로 덮고 옆에 새로운 구덩이를 파는 일을 계속했는데 처형된 사람들은 북한을 찬양하거나 대한민국 만세등 구호를 외치다 총에맞고 쓰러졌다고 회고했다.

김씨는 처형 이틀째 밤에 한사람이 달아나 군인들이 총을 쏘며 수색했으나 찾지 못했으며 다음날 동원된 주민들을 돌려보내 집으로 돌아왔다고 증언했다. 임모씨(77)는 수천명이 죽었지만 이들의 시신을 찾으러 오는 유족들은 볼수 없었으며 아직도 밭을 일구다 보면 심심찮게 유골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대전포럼 정현태 산내학살 진상조사위원은 『동서간 이데올로기속에서 빚어진 민족의 비극이 새천년까지 이어져서는 안된다』며 정부에 철저한 진상 조사와 피해자 명예 회복등 후속 조치를 촉구했다.

국방부 윤일영 부대변인은 이와관련 『관련 기록이 남아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문서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산내 정치범 집단 처형 사실은 뉴욕에 거주하는 재미동포 이도영박사(52)가 비밀 해제된 미국의 한국전 관련 정보보고 문건과 사진을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宋寅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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