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힘겨루기가 점입가경이다. 한나라당 내 친이-친박 대결이 끝내는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고 야당의 공격 또한 만만치 않다. 사안의 본질은 뒷전이다. 이미 예견된 바이지만 '막말 쏟기'로 변질되고 있다. 정부 측 인사들도 한몫 거들고 나선 형국이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엊그제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은 세종시 원안을 두고 '사회주의 도시'에 비유했다. 그는 "세종시 원안 자체가 수도 분할이므로 50년, 100년 뒤에 (나라가) 망할 수 있다"고도 했다. 밤이 되면 옛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처럼 도심이 텅빈 유령도시가 될 것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발전안(수정안)으로 가야겠다는 게 충청민 저변의 민심"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그의 전력에 비춰 '영혼 없는 관료'라는 눈총을 사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의 입장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정 총리는 "행정부처가 (세종시에) 오면 나라가 거덜 날지도 모른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정치권이 정 총리해임건의안을 검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 총리는 국회의 대정부질문 자리에서도 "정치인들이 정당이나 계파 보스의 입장을 앞세우기 때문에 정쟁 문제가 됐다"고 맞섰다. 국회에서 여권 내 세력끼리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 총리는 "충청도민들은 수정안이 원안보다 더 좋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충청인의 바닥 민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분석인데 과연 그런 걸까? 리얼미터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 전국적으로는 수정안 34.7%, 원안 37.2%, 절충안 19.7%로 원안이 수정안을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 대전·충청의 경우는 원안추진(38.6%)이 가장 많았고 이어 절충안(29.7%), 수정안(26.9%) 순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충청인의 민심은 원안 고수 쪽으로 더욱 기울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충청인들은 어느 지역보다도 세종시 논란의 실체에 대해선 비교적 소상하게 알고 있는 편이다. 그만큼 오랜 기간 동안 정치권으로부터 학습효과를 체득한 덕분이다. 역설적으로 얘기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충청민심이 반전되기가 쉽지 않은 배경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색깔론을 동원, 엉뚱한 방향으로 사안을 끌고 가거나 여론을 조작하는 꼼수를 들 수 있겠다. 이미 지역 내에서 이 문제가 가시화되면서 심상찮은 갈등을 빚고 있어 유감이다.

현재 정치공학적인 구도에서 보더라도 세종시 수정론은 국회 본회의를 넘어설 수가 없다. 여권 내 친이 주류의 세종시 수정론이 당내에서 절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집권 여당이 당론을 어찌할 것인지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이다. 여당 정치력의 한계를 먼저 탓하기 보다는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형국을 즐기면서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의 여론전이 치열해지고 그게 지방선거와 맞물려 세종시의 폭발력이 커지게 돼 있다.

이번 주말부터 설날 연휴가 시작되면서 관심을 끄는 건 바로 민심의 향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충청의 민심일 것이다. 설 연휴 전 이명박 대통령의 충청권 방문도 모색되고 있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도 충청권 민심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그렇다고 모든 게 확연하게 구분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게 한계다. 시간을 질질 끌면서 여론이 호의적으로 변하기를 기대하면서 국정 이슈를 선점하려는 여권의 심리도 없지 않을 터인데 그것 역시 무망한 일이다.

민생이 도탄에 빠져 있다. 밑도 끝도 없는 투쟁을 벌일 일이 아니다. 그게 바로 민심이다. 더 이상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만이다. 깨끗이 포기하는 것도 미덕이다. 정치란 목전의 승패의 개념을 넘어선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집권 3년차를 맞아 해야 할 일이 태산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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