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정국의 풍향을 가늠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정부 산하 9부2처2청을 세종시로 이전하려던 당초 계획을 백지화시키고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로 건설하려는 정부 방침이 전 국민적인 분란을 촉발시키고 있다. 여야(與野), 여여(與與)간의 반목은 물론이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그리고 비수도권 간에도 미묘한 갈등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러한 난기류는 결국 이명박 정부 집권 3년차 이후 국정장악력을 좌우하는 데 머물지 않을 것이다. 6·2 지방선거, 차기 총선 및 대선에 이르기까지 미래 권력구도에도 영향력을 미치는 변수로 작용하게 돼 있다. 정치권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밀어붙이려는 정부와 이에 반대하는 세력 간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이 앞서면서 논리적인 쟁점은 사라지는 국면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세종시 문제는 정치적인 이슈로 변질되고 말았다. 충청권의 처지를 보면, 참으로 딱하고 난감한 형국에 놓여 있다. 수도권 집중현상이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도 심화돼 있는 가운데 비수도권 또한 각 지역별로 자기 이익에 민감한 갈등구도를 형성해가고 있다.

이래저래 충청권으로선 세종시 갈등의 파편을 온몸으로 막아내야만 한다. 그에 따른 아픔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구겨진 충청의 자존심이야말로 그 무엇으로도 계량하기조차 힘들다. 지난날 그토록 수많은 논의와 국제공모까지 거치면서 이끌어 냈던 사회적인 합의와 약속을 한낱 물거품으로 만들 것인가? 그렇게 이 시대는 우리들에게 묻는다.

따져 보자. 지금까지 드러난 세종시 수정안에 획기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대안인양 제시된 걸 보면 원안에 나온 포괄적인 개념을 뛰어 넘지 못하고 있다. 국책사업을 정치적·정략적인 관점에서 마구잡이식으로 접근하다보니 졸속에 그칠 수밖에 없다. 도시수용 인구규모도 40만 명으로 당초 목표치보다 10만 명 줄어들었다.

예정가의 6분의 1수준(3.3㎡당 36만∼40만 원)으로 대기업들에게 부지를 공급함으로써 또 다른 특혜논란을 빚고 있다. 원주민들에 대한 보상가격 3.3㎡당 60만 원보다도 낮고, 이주자택지를 3.3㎡당 250만∼260만 원에 분양받은 것과도 엄청난 격차를 보인다. 경기도와 그 밖의 시·도로부터 '재벌에게 퍼주기'라는 원성을 사고 있다. 오히려 수정안만을 고집하기엔 사회·경제적인 비용이 적지 않다.

엊그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원안이 배제된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내놓은 것은 종전 입장을 재확인한 것에 다름없다. 구체적으로는 여당 내 당론변경단계에서부터 반대할 뜻을 분명히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기에다 민주당, 자유선진당 등 야당의 반발도 예사롭지 않다. 향후 국회 입법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해준다.

충청권에 원안 고수 계층이 많은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그건 지난날 상대적으로 홀대론에 시달려온 시대적인 상황, 학습효과와도 무관치 않다. 무엇보다도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지역정서의 몫이 크다. 신뢰와 통합의 가치를 되새겨야 할 정부가 앞장서서 그 정반대의 상황으로 충청권을 물고 들어간다는 게 지역의 정서다. 정권 및 국가정책에 대한 신의의 덕목을 근본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세종시 조성시기를 10년 앞당긴다고 하지만 그것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 차기 정권에서 이게 또 뒤집어 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쁜 선례를 자꾸 남긴다는 것은 후진사회다. '먹튀정권'이라는 평가가 두렵지 않은가. 세종시 수정안은 우리의 정치역량을 감지할 수 있는 주요 단서로서 두고두고 입질에 오르게 돼있다. 세종시의 운명은 충청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안 추진에 대한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지역민의 깨어있는 인식이 중요하다. 충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전국이 주목하고 있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