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위열 나사렛대 총장

살다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들이 많다. 만년필로 뭘 쓰려는데 글씨가 쓰여지질 않는다. 아무런 예고 없이 잉크가 떨어진 것이다. 만년필에 잉크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서 주머니 이곳저곳이며 서류 가방을 다 뒤져 봐도 평소에 그 흔하던 볼펜 한 자루 보이지 않고, 오직 그 만년필이 내가 소지하고 있는 유일한 필기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프린터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긴급사항을 담은 문서를 프린트하고자 하면 프린터의 잉크가 없다. 그것도 꼭 저녁 늦은 시간에 새 카트리지를 살 수 없을 때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

1986년 여러 우주비행사들과 민간인 교사 등 7명을 태운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수많은 연습발사와 완벽한 준비 끝에 발사됐다. 수년에 걸친 준비 끝에 발사된 것이었기에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으며 가족과 관계자들은 흥분했다. 승무원들은 수천 시간의 훈련을 받았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엔진과 기타 부속품들에 수백만달러가 쓰여졌다. 하지만 발사된 로켓은 76초 만에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나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연료 탱크를 밀폐해 주던 비싸지 않은 고무 링이 추위로 인해 뒤틀리게 됐고 로켓 발사시 아주 뜨거운 열로 인해 연료가 새게 됐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사 당시 현지 온도는 섭씨 2.2도로 그후 미항공우주국은 로켓 발사시 3.3도 이상에서만 실시하도록 하였다. 미세한 온도 차이의 간과가 이런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나의 절친한 친구와 그의 아내는 최근에 이혼을 했다. 그들은 둘이서 아주 멋진 집을 지었었다. 둘 다 아주 좋은 직장에 다녔다. 자녀들도 모두 성장하고 성공했다. 그들의 결혼은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갑자기 모든 것을 잃었다. 자녀들은 모두 놀랐다. 그 부부는 갑자기 잉크가 떨어진 것이었다. 규칙적으로 부부 사이의 긴밀함을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북에 있는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은 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은 이 두가지 무기가 그들의 안전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훌륭한 계획이 국제적으로 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위대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해 낼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전 지도자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수많은 형제와 자매들 그리고 특히 어린이들은 굶어 죽었고 영양실조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지난 50년간 그 거대한 시스템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수의 희생자들과 행방불명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과 목적은 도처에서 더 많은 문제와 도전에 직면하며 대내외적으로 체제 누수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아마 그들은 잉크가 떨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의 체제는 외교는 물론 국민들과 관련된 세부 사항 점검을 게을리한 결과 오늘의 대내외적인 어려움에 직면한 것이며 탈출구 또한 별로 없어 보인다.

누구나 시간을 투자하고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잉크가 떨어지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볼펜을 하나 더 소지한다거나 여분의 잉크를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IMF환란이라는 크나큰 국가적 시련에 부딪친 적이 있었다. 환란의 징후는 수년 전부터 나타났지만 누구도 이 징후를 알아차리거나 안전망 준비를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축제에 젖어 샴페인을 터뜨리며 더 멋진 축제준비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도처에서 우리의 공동체를 위협하는 현상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분출되고 있다. 도덕적 해이와 일탈, 집단이기주의가 빚어내는 이러한 현상들 앞에 안전망은 없어 보인다. 안전망 준비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너무도 적어 보인다. 우리는 사회적 완충역할을 하는 안전망이 없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하고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 오는가를 누누이 보아 왔다. 우리와 우리의 후손을 보호해 줄 안전망을 누가 만들 것인가? 우리 공동체의 스케줄이나 시스템에 방해받았을 때를 대비한 안전망 준비, 그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선물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