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한남대 교수

TV 화면에 비치는 북한군 병사의 복장은 그들의 표정만큼이나 경직돼 있다. 옷감 자체의 질감상 투박함은 물론이려니와 활동면, 기능성에 있어서도 아직 6·25 당시의 옹색함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보인다.

사병은 그렇다치고 장교 특히 차수, 원수 같은 최고위급에 이르러도 별반 나아진 느낌이 없다. 특히 무슨 기념식이나 공식행사에서 가슴과 배 부분을 온통 뒤덮은 훈장뭉치는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답답하게 한다. 우리 국군처럼 왼쪽 가슴 언저리에 간편하게 약장을 항시 패용하면 될 터인데 주렁주렁 달린 훈장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유산을 피부로 느낀다.
국민생활 수준과 국력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군복 디자인의 세련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지 모른다. 일상의 여유와 사회 안정 그리고 활발한 해외 문물 수용이 전반적으로 국민의 안목과 감각의 성장을 가져오고 그것이 고스란히 삶의 디자인을 끌어올리는 토대가 된다면 북한은 한참 멀었는지 모른다.

거기에 비하면 국군의 여러 복장이나 관련용품은 발전에 세련을 거듭해 이제 품질과 디자인에서 세계 수준에 올랐다. 푸른 제복이 얼룩무늬 군복으로 바뀌었고 육군의 경우 딱딱한 원통형 군모가 인체공학적인 유연한 구조로 개량됐는가 하면 해군 부사관과 장교의 근무모는 그 날렵함과 착용감이 수준 높은 멋마저 느끼게 한다.

패션과 건축, 가구, 가전, 자동차, IT, 액세서리 그리고 생활용품 같은 분야의 디자인이 세계와 어깨를 겨룰 만큼 일취월장하는 동안 이와는 반대의 길로 내딛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 우선 건물에 무질서하게 부착된 간판이 그러하다. 건물 벽면과 측면에 도배한 듯 늘어붙은 간판의 홍수와 그 아래를 걷고 있는 시민들의 세련된 외양이 비교되면서 아직 어수선한 도시문화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 준다. 보는 사람의 감각과 미학 차원은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듯 무조건 크게, 굵게, 튀게를 외치며 정제되지 않은 원색 글씨와 그림으로 뒤덮힌 간판에서 우리 디자인 감각의 또다른 현주소를 본다.

프랑스에서는 개업의원의 경우 건물 출입구 좌우에 붙은 30cm남짓한 금속판이 간판의 전부이다. 진료과목, 진료시간, 이름 그리고 전화번호 등이 새겨진 동판만으로도 환자들의 이용에 불편이 없다. 물론 예약제도가 정착돼 미리 전화를 하고 찾는 경우가 대부분인 까닭도 있겠지만 간판을 크게만 내건다고 영업이 잘되리라는 인식은 거의 없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전세계 공통인 미국계 햄버거 체인점의 상표 중 붉고 노란색이 거리미관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여 흰색, 회색 그리고 검정색만으로 간판을 내건 일도 있다. 그러고 보면 붉은색을 위시한 원색선호는 아무래도 국민의 안목이나 감각의 고급화와는 반비례하는 듯하다.

관광버스 좌석 커버와 커튼도 약속이나 한 듯 시골장터풍의 요란하고 자극적인 배색 일변도이다. 비용이 더 드는 것도 아니련만 조금의 여유, 약간의 생각, 잠시의 궁리로 우리 삶의 디자인과 수준은 껑충 뛰어 오른다. 예전과 달리 신사복 정장에 흰색 면양말을 신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듯 디자인과 코디네이션 감각이라는 작지만 큰 힘이 이제 더 빨리 우리 생활 속으로 스며들었으면 한다. 국군 복장과 용품의 세련이 보여 주는 멋과 실용성이 더 넓게 확산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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