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의 대가라면 워싱턴 포스트지의 밥 우드워드 기자를 뽑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는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으로 보도해 닉슨 대통령을 하야(下野)시킨 신화적인 언론인으로 비견되고 있다. 닉슨은 라이벌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운동 사무실을 도청한 것이 발각돼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쫓겨나는 불명예를 짊어졌다. 이 사건은 우드워드 기자의 끈질긴 추적과 고뇌가 없었다면 묻히고 말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드워드는 그만큼 정·관계 인사의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에 대해선 비판 정신이라든가 기자의 본질적인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권력층의 베일을 벗기는 데는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모교인 예일대 출신도 그렇고, 해군에서 5년간 정보장교로 복무한 인맥을 활용해 권력심층부에 접근했다. 따지고 보면 닉슨을 권좌에서 밀어내려는 내부세력이 우드워드를 통해 워터게이트의 실체를 만들어 낸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이 같은 증후군이 설치고 있음을 보고 있다. 대통령 선거일이 임박해 올수록 각종 폭로와 음모설이 판을 친다. 대선 상대후보를 흠집내기 위한 네거티브 전략이 횡행하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위해 변절을 밥 먹듯이 하는 철새정치인은 그렇다 치고, 국가 공무원들마저도 유력 후보에 줄을 대기 위해 조직 내부의 정보를 유출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사실이야 어떻든 일단 의혹을 제기하는 구태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요즘 도청설의 배경을 보면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다. 도풍(盜風)의 실체는 있는 듯한데 도청의 주체가 아직도 장막 속에 감춰져 있다. 물론 도청설을 제기한 한나당은 국정원을 지목하고 있지만 아직 그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나 국정원, 그리고 민주당 측에선 이를 부인하면서 그 화살을 한나라당에 돌리고 있다. 진실은 분명 하나일진대 서로를 공격하는 소재로 삼고 있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덕분에 국민만 헷갈리는 형국이다.

만일 국가기관에서 도청을 감행했다면 그건 보통 심각한 사태가 아니다. 그건 정권 차원의 범죄행위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닉슨이 도청을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던가. 사설 업체나 외국의 기관이 그 주체라 해도 그 심각성은 반감되지 않는다. 통신의 자유는 민주 시민이 사생활 보장을 통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기본권이다. 미국은 전세계의 팩스 한 장도 놓치지 않는 정보력을 과시한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면서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악용한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렇다면 그 피해자는 누구인가. 제1차적인 피해자는 물론 국민이다. 정치인들이야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을 게 분명하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한나라당 역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도청설로 불신의 늪에 빠진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하지만 지금까지 숱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유야무야식으로 끝나는 꼴을 보는 국민의 심정은 헤아려 봤는지. 지난 97년 대선 당시 불거져 나왔던 북풍이나 병풍에서 보았듯이 각종 바람이 용두사미격으로 끝나는 속성을 국민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누가 승자가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그런 판박이에 그칠 수 없다는 점을 정치권은 인식했으면 한다. 대권만을 노리는 행태도 사라져야 하지만 이를 은폐하는 행태 역시 발붙일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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