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21 정몽준 대표가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을 주장하자,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국민의견 수렴을 전제로 개헌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이에 뒤질세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도 임기 중에 개헌논의를 마무리짓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대선고지를 향한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개헌론이 새로운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 대표는 개헌시기에 대해 민주당의 확답을 요구하고 있어, 선거대책위원장 자리를 넘겨받지 않은 상태에서 노 후보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그간에 정치권에서 정부통령제와 책임총리제 내각책임제 등이 대안으로 거론돼 왔지만, 정 대표가 제시한 '분권형 대통령제'는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와 유사한 형태다. 대통령이 통일·외교·안보·국방을 전담하고 나머지 부서는 총리가 맡되, 대통령은 국회해산권 국회는 내각불신임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내각제와는 달리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2004년에 개헌을 발의해 2008년부터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실시한다고 밝히고 있어,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한을 분산하고 대선과 총선의 불일치를 정리할 수 있는 비교적 구체적인 개헌 시나리오로 볼 수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민주당 박상천 의원이 열의를 갖고 추진해 왔던 복안이다. 따라서 민주당 내에서도 심도 있게 논의돼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노 후보가 구체화시키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본다. 정략적인 접근을 배제하려는 의도는 이해가 가나, 누구든 정권을 잡고 나면 맘이 달라질 것은 뻔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요구된다. 내각제를 연결고리로 대권을 잡은 김대중 대통령도 개헌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실현 여부를 떠나 당초의 약속을 저버린 채 발의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자민련은 공조파기에 이어 와해 직전까지 치닫고 있다. 이처럼 개헌을 전제로 한 정당간의 공조체제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부정부패와 낡은 정치 청산' 등 여야가 내걸은 슬로건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권력구조의 개편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이런 주장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우리는 현행 단임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분산의 의미를 지닌 권력구조 개편을 주장한 바가 있지만, 대선후보들이 국민에게 각종 약속을 내걸고 있는 현 시점이 개헌론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적절한 기회라고 본다. 적어도 개헌에 대한 입장과 실현 방법 및 시기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있어야 대선 이슈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니 이를 구체화시켜 국민에게 선보이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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