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환 충남도 교육감

정책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책 결정 뒤에는 반드시 이해 당사자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쪽을 중심으로 결정하면 저쪽에서 서운해 하고, 저쪽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이쪽이 아쉬워한다. 도대체 양쪽을 만족시키는 결정이 어디에 있는가? 그럴 때마다 고민하는 것이 최고 결정권자의 일이다.

그래서 일을 하다 보면 지혜를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할 때가 있다. 웬만한 일은 지혜가 없어도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결정할 일이 여러 사람에게 미치고 중요한 정책일 경우에는 곰곰이 생각해 최선이 되도록 결정해야 한다.

행정의 각 분야에 걸쳐 속속들이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핵심내용을 파악하고 미세한 부분은 참모들에게 일임한다. 그 때마다 담당자를 믿고 가장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혜를 찾아 본다. 결정을 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에게 모름지기 맑은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조선조 인조 때의 김신국이라는 사람은 은(銀)을 포장하는 부서에서 감독을 하고 있었는데, 책임감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하급관리가 은 한덩이를 숨기고 눈치를 보다가 뒷간에 가는 척하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다 은을 숨기고 돌아온 하급관리는 태연하게 일을 계속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김신국은 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짐짓 모르는 척하고 그 관리를 불러 지시했다.

"내가 전에 앓았던 신경통이 다시 도지려 하니 오래 앉을 수가 없네. 더 이상 지킬 수가 없으니, 오늘은 그만 하세. 은은 일단 창고에 넣어 두고 다른 사람은 모두 귀가시키도록 하게. 그리고 자네가 남은 사람들이 내일 일을 계속할 때까지 자리를 뜨지 말고 은을 지켜주게나."

김신국이 돌아간 뒤에 은을 훔친 관리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만약 내일 은을 헤아려서 부족하면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 것이 뻔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 관리는 감춰뒀던 은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지혜로 은을 되찾은 김신국은 그 사실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다른 이유를 들어 그를 파면했다. 결국 김신국은 남의 잘못에 관대하면서도 공정성을 잃지 않은 결정을 지혜롭게 해냈다. 그야말로 맑은 지혜를 사용한 것이다.

일이라는 게 시기를 놓치면 아예 하지 못하니만 못할 때가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을 경우도 있다. 느긋하게 기다리면 저절로 밝혀질 일도 서두르면 일이 꼬이게 될 수도 있다. 고집을 부려서 작은 일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큰 것을 잃을 수 있고, 지나치게 신중해 일을 제때에 결정하지 못하면 아예 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또 그냥 지나쳐도 될 일들을 걱정하다 큰일을 놓칠 수도 있다.어쨌든 결정할 사안 앞에서 숙고(熟考)하는 가운데 맑은 지혜가 나옴은 분명한 것 같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