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

이탈리아 정계를 부패의 수렁으로부터 구해 낸 역사적인 인물로는 밀라노 지방검찰청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를 꼽을 수 있다. 그는 1992년 고질적인 정경유착, 그리고 부패와의 성역 없는 전쟁을 전개하기 위해 이른바 '마니 풀리테(Mani Pulite·깨끗한 손)'를 선포했다. 정계·관계·금융계 및 대기업 등에 대한 전면수사 결과 4명의 전직 총리를 포함해 모두 3000여명이 뇌물 혐의로 체포·구속됐을 정도라니 당시 상황을 짐작할 만하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부패세력을 발본색원하려는 검찰, 언론, 시민의 힘이 보태진 결과였다.

칠레 군사 독재자 피노체트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스페인의 가르손 판사, 칠레의 구스만 판사도 부패정치 척결의 선봉장으로 기억된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그 위상을 지키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1976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를 구속한 데 이어 1992년엔 '사가와 규빈 사건'에 연루된 가네마루 신(金丸信) 자민당 부총재 등을 우여곡절 끝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세웠다. 아무리 법이나 제도가 완벽하더라도 이를 수호하는 주체가 없다면 그건 명목상으로만 법치국가에 불과할 뿐 무법천지에 다를 바 없다.

요즘 우리나라도 불법 정치자금 시비로 연일 시끄럽다. 그간 정치권력의 시녀로 지목돼 온 검찰이 이번엔 어떻게 자신의 위상을 정립할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현직 대통령의 측근 비리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고, 지난 대선 당시 대기업과 정치권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에 대한 전방위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더욱 검찰 행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마니 풀리테'의 재판(再版)이 한국에서도 나타날 것인지, 그건 전적으로 검찰의 몫이다.

검찰이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 구본무 LG 회장과 이학수 삼성 구조본부장을 비롯해 전·현직 대기업 고위 임원 등 총 30여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고, SK 비자금에 이어 10여개 기업이 한나라당에 거액의 대선자금을 추가로 제공한 내역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가 하면 국회를 통과한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에 대한 특검법안에 대해 노 대통령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도 미지수다. 이와 관련, 대통령의 권한(헌법 제53조)을 둘러싼 법리 논쟁도 여전하다. 현재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 중인데도 국회는 대통령 측근 비리에 대한 특검법안을 대통령이 수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로선 자신의 위상을 지키려는 검찰의 의지와 더불어 정치권이 검찰을 불신한 나머지 특검이라는 수단을 동원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힘 겨루기로 보일 테지만, 이젠 제대로 된 방향이 설정돼야 할 것이다. 모두가 종전과는 다른 비상한 각오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이제야말로 국민을 보고, 세계 속의 한국을 의식하는 마인드를 갖췄으면 한다.

진정 정치권이 환골탈태하려면 모두가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조직 보호를 위해 전체적인 상황을 흐리려는, 말하자면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려는 발상이 아직도 횡행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선 특정 세력을 철저히 없애기보다는 화해와 용서를 위한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구성해서 운영한 경험이 있다. '마니 풀리테', 아니면 '진실과 화해 위원회' 어느 것이 좋을까. 무엇보다도 정치권 스스로 이 국면을 말잔치로 호도하지 말고, 허점투성이인 정당의 `회계 관행'을 비롯해 정치개혁이라는 화두를 챙겨들고 거듭나려는 자세를 국민들에게 먼저 보여줘야 한다. 이처럼 너도나도 깨끗하지 못하므로 남만 탓하기에 앞서, 먼저 '내 탓'을 바탕으로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 가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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