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과 눈

▲ 충남예술고 김민숙교사
"선생님, 눈 와요."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키가 큰 훈이가 눈인사를 한다. 창밖을 보니 나뭇잎 눈이 산 위에서 부는 바람에 펄펄 날린다. 교정에는 산에서 내려온 솔잎, 참나무잎, 이름 모를 노란 낙엽들이 교정의 잎들과 한데 어울려 집단무를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고추장에 숙주나물과 수다를 비벼 동료들과 오전 수업 얘기를 하며 맛있게 먹고 있었다. 여자인 나보다 더 자연의 변화를 잘 감지하며, 그냥 무덤덤히 쓸어 휴지통에 버리지 않고 자근자근 밟으며 선율과 색을 배합하고 춤의 동작을 연상하는 아이들.

호른을 전공하는 훈이는 바이올린을 켜는 참한 영은이와 사귄다. 여느 남녀공학처럼 여학생이 공부에 더 적극적인데, 훈이와 여학생의 성적 격차도 심하다.

대부분의 고등학생이 그렇듯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주말에는 전공 레슨을 가는 예술가 지망생들에게는 시간을 쪼개기도 어려운가 보다. 휴대폰 문자메시지와 이메일을 보내고,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걸어가고, 연습 도중 눈인사를 날리고…. 신세대들의 연애방정식이다.

매미가 요란스레 울던 여름이 가고, 빛바랜 잡초 무성한 언덕 위로 솔바람이 불던 아침,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퉁퉁 부은 얼굴로 영은이가 내 팔을 당긴다. 엄마의 반대가 심한데, 훈이에 대해 자세히 물어 보지도 않으시고 무조건 나중에 수능이 끝나고 대학 가서 만나라고 하신단다. 늦은 밤 연습에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는데 훈이에게 메일 보내냐는 엄마의 말이 빈정거림으로 들려 상처를 받고 한바탕 설전이 오갔던 모양이다. 얼마나 답답하면 내게 조언을 구할까 싶어 잠시 데리고 교정을 거닐며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았다. 시작보다 만남을 가꾸는 일의 어려움과 순수하며, 곱디 곱게 키우는 만남에 대해….

주말에 남학생들끼리 밤낚시를 갔는데 고기를 많이 잡았다고 자랑이다. 뭐했냐는 물음에 큰 고기 몇 마리만 찌개로 끓여 먹고, 나머지는 다시 물 속에 놓아 줬단다. 요리할 만큼만 남기고 미련없이 물고기에게 자유를 주는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예술가의 고운 마음씨.솜털같이 하얀 몸을 흔드는 갈대무리 사이로 그들만의 고민의 찌를 강물 속에 던지며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아이들이 있기에 늦가을 바람에도 춥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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