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사랑' 원칙 초지일관

▲ 보령 대명중 김선남 교사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버티기가 버거운 교단의 현실 속에서도 '제자에 대한 한없는 사랑' 하나만으로 14년째 교단을 지켜 온 우리 시대의 참스승이 있다.

보령 대명중학교 김선남(金善男·39) 교사는 평범한 진리이면서도 불변의 이 가치를 교단에 첫발을 내디딘 그 때부터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지난 89년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유별나게 김 교사의 기억을 떠나지 않는 제자가 있다.

교사 초년병 시절인 1991년, 3학년 담임으로 재직하고 있었을 때다. 조군은 가정형편이 불우하지만 성실한 학업태도를 보여 항상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는 그런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학업을 포기하고 가출을 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니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청소년기의 가출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회피하거나 일탈을 목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군의 가출은 일탈보다는 자신의 환경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김 교사는 즉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주유소로 무작정 찾아가 조군을 데려왔다. 수차례의 설득을 통해 다시 한 번 학업의 기회를 얻게 된 조군은 김 교사의 계속된 관심과 사랑으로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상급 학교에 진학, 지금은 육군 부사관으로 입대해 어엿한 대한의 남아로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김 교사가 '제자 사랑' 하나만으로 어려운 교직생활을 버텨온 것은 아니다.

김 교사는 누구보다도 잘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시내권 내의 유일한 사립학교이다 보니 학부모들이 공립학교와 비교해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학력을 신장시키는 것만이 학부모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 교사는 1학년을 지도하게 된 1993년부터 학력 신장에 초점을 맞춰 학급을 경영했고, 수학경시대회를 대비하기 위한 심화반을 1학년부터 편성, 별도의 보수도 없는 방과후 교육활동을 자처하고 나섰다. 휴일에까지 학생들을 인솔해 중학생 올림피아드 등 각종 대회에 참여하는 등 다소 지나치다는 말까지 들어가며 열성을 보였다.

이듬해인 1994년, 김 교사는 보령시 학력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최군에게 기대를 걸었다.

"한 번 다듬어보고 싶은 제자였습니다. 그런 최군이 대장암 판정을 받은 겁니다."

김 교사는 투병생활을 하는 최군을 수시로 찾아가 격려하고, 학부모와의 상담을 통해 지속적인 관심을 쏟았다. 암 투병 와중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열정을 보였던 최군은 공교롭게도 김 교사가 3학년 담임을 다시 맡게 됐고, 현재 서울 S대학 법학과에 진학해 예비 법조인으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김 교사는 이후 심화반의 실력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 점심시간 및 여유시간을 이용하면서까지 수학 지도를 했고, 방학 중에도 예외는 없었다.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김 교사가 1995년부터 97년까지 담임 및 교과지도를 맡았던 3학년 학생들이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학년 때부터 이미 담임 및 교과지도를 통해 학생들의 신상 파악이 용이했고, 계속적인 심화반 운영으로 학생들의 경쟁력이 도시 지역 학생들과 겨뤄 손색이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실제로 김 교사는 제11회 충남도 국·영·수 학력경시대회 2위를 견인했고, 특수목적고인 과학고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시키기도 했다. 또한 1999년에서 2002년까지 4년 연속으로 보령시 수학·과학 경시대회에서 금상 이상의 성적을 달성하는 등 학력경시대회에서만 충남교육감상 5회, 보령교육장상 4회를 수상하는 개인적인 영예도 얻었다.

"심화반 운영을 계획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연속성이 보장되는 사립학교라는 특수성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심화반 운영이 교육의 수월성 확보라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학생간 위화감 조성이라는 측면을 생각해 보면 씁쓸한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이 시기에 얻은 성과는 제가 학생지도를 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노하우와 노련미를 배우는 시간이 됐습니다."

김 교사는 이 시기의 열정을 언제까지 잃지 않으려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한다.

김 교사는 1997년부터 교무부장이란 중책을 수행하면서, 교무업무 경감에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시간표 작성 전산프로그램을 처음 도입함으로써 업무 경감의 개가를 올린 김 교사는 일찍부터 모든 업무가 전산화될 것을 예상하고, 자발적으로 학교정보관리시스템의 관리자를 맡아 교무업무 및 학교행정의 흐름을 직접 체험했다.

실제 각종 전산프로그램을 도입함으로써 전체 교사의 업무를 경감시켜 교수·학습 업무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것도 김 교사의 몫이었다.

김 교사는 교육자의 마음가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로 '자기 충족적 예언'이란 의미를 가진 '피그말리온(Pygmalion) 효과'를 든다. 학생을 대할 때 긍정적인 측면에서 학생을 사랑하고, 그에 따른 자극을 주면 실제 그렇게 되는 경우를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1990년 초임 발령부터 맡아 왔던 담임의 소임을 계속해서 맡는 것이 작은 소망이라면 소망입니다. 제가 담당한 학생들의 눈높이를 이해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더 많은 학생들을 사랑하는 발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죠."언제나 '사제동행(師弟同行)'이란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김 교사의 교육관이 그를 바라보는 제자들의 눈동자에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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