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걸 충남지방경찰청 정보과

이 가을을 바쁜 채 그냥 보내는가 했는데 직장내 종교모임의 성지순례 덕으로 산의 정취와 고찰의 그윽한 향과 직장동료, 가족들과의 유대감을 깊게 할 수 있었다.

늦가을 일요일 아침,

우리 일행은 고르지 못한 기후로 인해 서둘러 성지순례길에 나섰다. 비바람이 치는 가운데 엄숙함과 고요함만이 가득한 금산사 경내를 둘러본 뒤 미륵전 앞에서 주지스님의 법어를 들었다.

"빚지고 살지 말라. 해탈 등 모든 것이 자유로 이루어져야 함이요. 욕심도 없어야 하고 빚지지도 말 것이요. 남을 괴롭히거나 자신이 괴로우면 안되니 도와주시게…."

내심 그 말씀대로 하려면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차장 입구에 있던 장애인에게 마음 한 쪽을 주고 돌아섰다.

이 날은 좋은 말씀만 생각케 하는 일만 생겼다.

부안 내소사에 도착하여 경내로 들어서려는데 기와불사를 받아 진열해 놓은 기와 중에 천주교 인천교구청의 어느 신부님이 써 주신 '부처님의 해탈과 예수님의 부활을 받들 수 있는 기쁨을'이라는 글귀가 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부활은 '새롭게 태어남'이요. 해탈은 '새롭게 깨어난 자유로움'이라 하지 않았는가! 종교가 다르고 섬기는 이가 다르더라도 우리네 신앙을 한몸에 새길 수 있는 좋은 뜻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동안 명산과 명찰을 찾아 기도도 하고, 기독교와 천주교를 이해하기 위해 교리도 공부해 보았지만 이를 통해 다시 되새겨 보니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와 보니 성지순례를 통한 나의 신행은 어찌할 수 없이 세상의 뜻- 무질서, 헐뜯음, 시끄러움, 멋대로 마음대로 제각기 행동하고 생활하면서 남 탓 , 사회 탓, 정치인 탓, 나라 탓-에 조금씩 생채기를 당하고 있었다.

언제나 '나'를 잊고 '우리'를 생각할 수 있을까!

조금만 서로를 생각하며, 양보하고 배려하면 친절이 생겨 질서가 바로 서 화목할 수 있을텐데…. 서로가 시기하여 꾸짖고 때리고 욕심부리지 말고 빚지지 않는다면, 부처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사랑은 해탈과 부활로 새롭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저물어 가는 창 밖을 바라보며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해탈과 부활을 받들 수 있는 기쁨을", 그리고 김제 금삼사 주지스님의 "해탈하여 빚을 갚으라" 하시던 그 오묘한 말씀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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