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수 배재대 총장

심보를 고쳐야 병이 낫는다고 한다. 그것을 어떤 사람은 심보건강학이라고 이름지었다. 즉 자연의 이치대로 살면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데,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는 권력·재력·학력·능력의 노예가 돼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고 한다.

농경사회는 사회 전체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면서 살았기 때문에 사회가 건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산업사회를 거쳐 지식정보사회가 되면서 사람이 순리대로 살지 않고 있으며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도 않고 있다. 건강한 사회는커녕 병든 사회가 돼 삶의 질을 위협하고 있다.

모든 몸의 질병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렇다. 심보를 좋게 쓰면 건강하고 나쁘게 쓰면 몸과 마음이 편치 않다. 심보가 건강의 저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불행한 것은 경쟁적 관계를 벗어나 적대적 관계를 갖는 것이다. 지금 대통령 선거도 축제처럼 선의의 경쟁적 관계가 돼야 한다. 오죽하면 우리 속담에 배 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으랴.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가는 사람을 못 보아주는 심보들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페어플레이 정신은 없고 이전투구로 끝을 보려 한다.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살겠다는 마음보가 아니라 너 죽고 나 살자는 초이기적인 심보로 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투서나 협박 전화가 많다. 투서나 협박 전화는 사랑이 부족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일종의 병이다.

현대사회는 자기의 삶을 나눠 갖는 사회적 자산이 필요한 시대이다. 그럼으로 베풀 줄 아는 사람, 베풀 줄 아는 기업만이 성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열어 놓고 사는 것이 아니라 닫아 놓고 살려 한다. 분수껏 살려는 생각보다 욕망과 욕심으로 살려고 하니 그 삶이 뒤죽박죽으로 엉키게 된다. 결국 자기가 저질러 놓은 절망의 덫에 자기가 잡히게 된다. 세상을 불안하고 염려스럽게 보면 결국 그렇게 되며, 세상을 믿고 의지하고 살면 또 그렇게 된다. 세상을 보는 관조가 자기 마음먹은 대로, 생각하는 대로 일어나는 자연의 법칙을 깨달아야 행복하다. 그런데 남을 의심하고 괴롭히고 못살게 하면 그 삶은 고해가 된다. 투서하고 협박 전화질하면 속이 시원해질 것 같으나 오히려 더 답답해진다.

한 청년이 어느 날 윗사람으로부터 질책을 받고 못 마시는 술을 동료들과 어울려 마시게 됐다. 술 취한 김에 상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나니 언짢았던 기분이 다 풀려 상쾌한 기분으로 귀가했다. 그는 그 후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으레 한잔 술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이것을 반복하다 보니 곧 습관이 됐다. 그가 정년이 되었을 때 얻은 것은 깊게 패인 이마의 주름과, 아무 쓸모없는 나이, 그리고 조금만 기분 나빠도 술을 마셔야 하는 알코올 중독 증세와 입만 벌렸다 하면 나오는 불평, 불만, 굽은 허리, 초라한 몰골이 전부였다. 잃은 것은 젊음·희망·꿈·용기·투지·정열·사람 등 모두를 아름답게 보며 어떤 일에도 감사한다는 긍정적인 마음이었다.

만일 괴로울 때 그 원인을 깊이 생각해 즉시 해소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대응방법을 모색하던가, 잠시 여유를 갖고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더라면 삶이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인격과 능력이 남다른 사람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은 어느 대체의학 이야기를 옮긴 글이다. 습관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 투서나 협박 전화도 일종의 습관이다. 사회 악이다.

모두 사랑하며 살자. 사랑은 아낌없이 주고도 혹시 모자라지 않나 걱정하는 마음이다. 우리 이렇게 사랑의 마음이 가득한 대전을 만들자. 투서나 협박 전화는 대전을 멍들게 한다. 심보를 고쳐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