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봉·국제와이즈멘 한국서부지구 부총재

대학수학능력 시험때면 언제나 차갑고 스산한 바람이 수험생들을 움츠러들게 한다.
시험장 앞에만 서면 왠지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과 위축된 어깨, 그리고 두근거리는 새가슴으로 입시는 시작된다.

마치 그것이 효도라도 하는 길인 듯 시험 잘 보겠다고 마음먹고 부모님을 위로해 보지만 눈빛은 잔뜩 긴장돼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교문 앞을 서성이며 고득점을 염원하는 엄마들.
그러나 시험이 끝나면 최선을 다한 만큼의 보상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 우리 수험생들의 현실이다. 도대체 시험이란 무엇일까?

대학은 인격을 도야하고 삶의 폭을 넓히며 심오한 학문의 세계에 심취하는 곳이라는데, 그 입학의 판가름이 몇시간 동안 치러지는 객관식 위주의 시험만으로 칼로 두부자르듯 분류해 낼 수 있는 것인가?
고교 교육은 전인(全人)을 지향하는 교육이라는데 암기식 교과과정의 습득으로 정말 우리는 전인이 돼 가고 있는가?
무엇인가 맥이 통하지 않는 현실적 제도 속에서 그들은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입시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하나 더 보태졌다. 가난이 몰려오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몸도 마음도 잔뜩 움츠러들게 했던 지난 여름의 천재(天災)와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경제불황의 복병 등이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통과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 젊은이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로, 그 고통과 가난의 생활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가난이란 고통은 힘겨울지라도 이겨가며 현실적 운명을 고민하고 체험하다가 자신의 삶의 길을 새롭게 설정해 나가는 변신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시험을 포기하고 직장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아예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실리주의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대학입시생들의 성향이 바뀌어 가고 있는 셈이다.

둘째로, 온실 속의 장미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서리내리는 길가의 들국화를 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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