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옥 논설실장

요즘 수도권 산업정책을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심정은 허탈하기 그지없다. 정부가 수도권 지역의 공장 신·증설을 억제해 왔던 그간의 정책을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이젠 공장도 수도권으로 몰리게 될 여건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방은 산업 공동화(空洞化)현상의 가속화는 물론 그로 인한 파급효과로 몸살을 앓을 처지에 직면했다. 전국이 골고루 잘살도록 해 주겠다는 정부의 다짐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 첫 신호탄은 바로 오늘부터 시행되는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다. 건교부도 덩달아 '택지개발촉진법'까지 개정해서 택지개발지구 내에도 업종 구분없이 대형공장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역대 어느 정권에 견주어 보더라도 이는 중대한 정책 변화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아도 관련 부품산업, 인력, 금융, 유통망 등 유·무형의 각종 인프라가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방은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신규 공장은 당연히 지방을 외면하게 될 것이고, 지방 소재 공장마저 서울로 옮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 셈이다.

비수도권에서 그토록 이 법안을 반대해 왔지만 역시 중앙의 사고는 달랐다. 재계는 말할 것도 없고, 수도권 자치단체, 그리고 중앙언론까지 나서서 "수도권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소외될 것이 뻔한 이른바 '지방민'들의 목소리만 작았다. 특히 지방민들은 참여정부의 '지방분권화 국가 만들기'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래서 국토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수도권의 '빗장'이 그리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일말의 바람도 갖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최근 수도권 정책결정 과정을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각 지역을 순회할 때도 수도권 집중 현상에 대해 "현재 한계점을 넘어 난개발과 황폐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그 심각성을 인식한 바 있다. 수도권 문제에 대해서는 "새로운 종합정책이 나올 때까지"라는 전제가 붙어 있긴 하지만 "공장총량제 등 수도권 규제를 더 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수도권 규제 완화로 "지방이 손해 보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현재 지방이 손해 보지 않을 대안이 눈에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이미 기업들이 지방이전을 기피하고 있다고 한다. 충남도의 기업유치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물론 지역의 자생적인 발전기반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특화된 지역 전략산업을 통해 지방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정책은 그야말로 백 번 들어도 옳은 정책이다. 이제는 지자체의 역량부족으로 인한 경쟁력 여부는 각기 지방민들에게도 달려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권역 거점별 클러스터 등의 성장 인프라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지는 의문이다.게다가 외국인 투자기업만 수도권 내 공장 신·증설이 허용되자 제기된 국내기업과의 '역차별' 논쟁을 놓칠 수 없다. 재계 역시 수도권 규제를 풀어줄 경우 투자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아직도 수도권에 대한 자원의 선택과 집중이 결국 국가 경쟁력에 결정적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한 지방은 여전히 시골로 남게 될 공산이 더욱 커질 뿐이다. 지방도 나름대로 경쟁원리에 입각해서 비전을 제시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미 서울은 수많은 자원이 집중돼 있는 거대한 공룡이다.

정부의 수도권 정책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참여정부의 역점과제인 '동북아경제 중심'과 '지방분권 및 국가 균형발전' 정책은 결국 이미 인프라가 구비된 서울을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도권 정책의 기본방향이 종전의 '집중 억제'에서 '계획적 관리'로 바뀐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론 이번과 같은 사례가 속출할 것이다. 사실 '신행정수도 충청권 건설' 문제도 '수도권 공화국'이라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과의 갈등이 예고돼 있는 형국이어서 향후 정치력을 주시하고자 한다. 수도권의 경제적 위상을 강화하는 대신 지방을 홀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비수도권의 공감을 얻을 만한 대안이 제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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