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 목원대학교 이사장

국립현충원 앞을 지날 때마다 국가의 소중함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수많은 순국선열의 값진 희생을 떠올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의 기억은 희미해져 가지만,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자유는 수많은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의 대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사회가 불안정해지고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때일수록 충절을 지켜 온 옛 선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만 간다. 나라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국민 모두가 충성심을 갖고 맡은 일에 전심전력해야 한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생각할 때마다 문경새재 제1관문 앞에 세워져 있는 신길원 현감의 충절을 되새겨 본다.

충절비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문경현감으로 재직하던 신길원은 문경성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끝까지 항전했으나, 끝내 성이 함락되고 말았다.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小西行長)는 항복을 강요했으나, 신길원은 위세당당하게 호통을 치면서 기개를 굽히지 않았다. 왜장은 자신이 항서를 작성한 후에 신 현감에게 날인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신 현감은 관인을 오른손에 쥐고는 내놓지 않았고, "상감께서 나를 충성되이 보사 관인을 맡기셨는데 내가 어찌 항서에 도장을 찍을 수 있겠는가?"하고 왜장을 심하게 책망했다.

화가 난 왜장은 신 현감의 오른손을 칼로 내리쳤다. 오른 손목을 잃은 신 현감은 왼손으로 도장을 쥐고 내놓지 않았다. 더욱 화가 난 왜장은 왼손마저 내리쳤다. 두 손목을 잃은 신 현감은 입으로 관인을 물고 항거했다. 결국 왜장이 욕설을 퍼부으면서 충성스러운 신 현감의 목을 내리치자 그제서야 관인이 땅으로 떨어졌다. 왜군들은 무력으로 성을 빼았고 현감의 생명을 거두었으나 신 현감의 충절만은 빼앗을 수 없었다.외롭게 서 있는 충절비는 오늘도 문경새재를 찾는 나그네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비문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며, 눈가에 이슬을 맺히게 한다.

우리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선열들을 기리는 현충일(顯忠日)은 6·25전쟁 이후 1956년 대통령령에 의해 '현충기념일'로 제정된 이후 1970년 6월 15일 공휴일로 지정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공산주의자들로 무장된 동족에 의해서 희생된 수십만 국군의 희생을 기리고, 호국정신을 후대에 계승하기 위해서 제정된 날이 바로 현충일이다.

현충일은 희생당한 선열들의 유족들에게만 국한되는 하나의 행사로 치러지는 기념일이 아니라 온 국민에게 국가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의 압제에서 해방된 사건을 유월절로 제정, 수천년 동안 지켜 오면서 후손들에게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가르쳐 왔듯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국가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교육의 장이 돼야 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의 군사행동을 걱정하면서 동북아의 정칟안보상황에 신중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어려움과 불안정은 우리 사회의 어려움과 불안정은 곧 국가의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정치인과 공직자 그리고 각 분야의 지도자들이 애국심을 가지고 이 나라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서 신길원 현감처럼 충성해 줄 것을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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