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회장

가령 대구, 부산이나 광주에 행정수도를 이전한다는 발표가 있었다고 하자. 그들에게 '정말 당신네 지역에 행정수도가 오는 거요?' 하고 물으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요? 틀림없소!' 하고 열을 올릴 것이다. 그런 뜨거운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인다. 그러나 요즘 충청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글쎄유, 오겠지유' 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것이 충청권으로의 행정수도 이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최근 필자가 만난 충청권 출신의 어느 원로급 정치인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피력하며 일본의 경우를 그 예로 들었다. 일본은 1950년대부터 도쿄의 행정수도를 이전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나 지난 90년에는 국회 통과까지 성사시켰지만 14년째 실현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정치 사정이 일본보다 더 복잡하고 지역주의가 극심한 우리 나라에서 과연 행정수도 이전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년의 국회의원 선거도 가장 큰 변수다. 한나라당 사정도 그렇다. 한나라당에는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추진협의회라는 게 있다. 이 협의회는 지난달 창립총회를 갖고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키로 하는 한편 행정수도 입지 선정을 내년 국회의원 선거 전에 확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때 금년 안에 후보지를 선정하겠다고 공약했으니 그 공약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하고 나선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충청권 출신뿐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왜 국회의석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전부 나서지 않고 충청권 의원들만 도장을 찍었는가? 내년 총선에서 서울·경기도의 표를 잃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걱정은 지금 정부가 '밀면 밀린다'는 인식을 심어 줬다는 데 있다. 철도분규, 화물연대파업, 교육부의 NEIS 파동… 등등, 모두가 '밀어붙이면 밀리는 정부'임을 보여준 것이다.

하물며 이런 문제들보다 더욱 강렬한 반대의 힘에 부닥칠 행정수도 이전 문제인데 과연 정부가 버텨낼 것인가? 서울시 의회를 비롯 서울시내 여기저기 걸려 있는 '행정수도이전 반대'의 플래카드를 보면 곧 닥쳐올 충돌의 검은 구름을 보는 것 같다. 서울의 일부 언론에 대통령 선거 공약과 정책은 별개라는 말도 나오고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것 역시 심상치가 않다.

또 이런 우려를 하는 사람도 있다. 여당은 충청권을 묶어 두고 내년 총선에서 몇 석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 행정수도 카드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그 효력은 이미 지난 대선 때 경험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행정수도 이전'에 신뢰성을 주려면 올해 안에 행정수도 입지를 선정해야 한다. 선거 후로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철저한 기초조사가 마련돼 왔고 오늘의 토목기술은 공사기간도 대폭 축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행정수도 건설 추진기획단 자문위원회 지역분과 현판식을 가졌다. 함께 박수도 쳤고 특별법 국회통과 등 순조로운 순항을 예고하는 대화들이 꽃을 피웠다. 옆에서 보기에도 좋다. 그러나 입지 선정이 선거 후로 미뤄지면 행정수도는 정치 바람에 표류할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충청도 사람들만 상처를 입는다. 따라서 우리는 행정수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확산과 뜨거운 의지를 모두가 보여 줘야 하고, 정부는 입지 선정을 앞당겨야 한다. 이것이 행정수도가 건너야 할 강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