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고개' 신나게 넘∼어간다

▲ 영화 '아리랑'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계를 이끌었던 당대의 거장 이두용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1926년 발표돼 온 국민을 울음바다로 몰아 넣었던 나운규 원작 '아리랑'을 입소문을 통해 재구성한 영화 '아리랑'이 이 감독을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서게 만든 작품이다.

마치 일제시대에 유행했던 무성영화와 같은 영상처리와 카메라 기법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역시 이두용"이라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는 것이 영화 평론가들의 한결같은 평.

흑백 무성영화에서처럼 변사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찰리 채플린 영화처럼 배우들의 동작을 빠르게 보이도록 처리한 18프레임 촬영기법을 도입, 사실감을 더했다.

나운규의 '아리랑' 이후 많은 리메이크 작품들이 있었지만, 원작의 매력을 그대로 살리면서 동시에 현대인의 정서에 맞는 웃음과 눈물, 해학을 잘 우려낸 영화는 이제까지 없었다. 게다가 영웅적으로만 그려지던 주인공 영진은 2003년판 '아리랑'을 통해 관객들 곁으로 조금 더 바짝 다가선 친근한 캐릭터로 다시 살아왔다.

이 영화가 선사하는 웃음은 어떤 코미디 영화보다 웃기다.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내는 슬픔은 어떤 멜로드라마보다 진하며, 배우들이 보여주는 오버연기는 구수한 된장국처럼 구성지다. 이것이 바로 인스턴트식품 같은 한국 영화계에 당당히 도전장을 낸 이 영화의 자존심이다.

잘 생긴 외모에 반듯한 모자, 걸어갈 때마다 바람에 휘날리는 망또! 서울로 대학공부 떠나던 오빠 영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아버지도, 동생도 못 알아보는 오빠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만세 운동하다 못된 일본놈들에게 고문당해 그 후유증으로 생긴 증상인데, 그 미친 중에도 친일파들을 알아보는 눈은 변함없이 날카롭다.

그런 와중에 영희네 집을 날마다 괴롭히는 악질 집안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떵떵거리는 천가가 바로 그 주인공.

영진이 천가 식구만 보면 달려 들곤 하자, 빚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하는 영진의 아버지는 불쌍한 아들을 집에 묶어 둬야 하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중 영진과 함께 대학에 다니던 현구가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온다. 현구의 늠름한 모습에 영희는 마음이 설렌다.

이를 보는 천가네 망나니 아들 기호의 억장은 사정없이 무너지고, 이에 기호는 빚을 빙자로 호시탐탐 영희를 노리다가 현구가 가르치는 학교를 한바탕 뒤집어 놓는다.

새로 부임한 주재소장을 맞는 마을 잔칫날. 어른이 나간 틈을 타 기호는 영진네 집에 찾아와 영희한테 짐승처럼 달려든다.

"오빠! 오빠! 나 좀 살려 주소."

하지만 영진은 욕보는 동생이 안중에도 없고, 영희는 아무리 반항해도 소용이 없다.

바로 그때 갑자기 정신이 돌아온 영진이 시퍼런 낫을 들고 기호에게 달려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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